선거와 시민정신_승리의 십계명
선거와 시민정신_승리의 십계명
  • C헤럴드(CHERALD)
  • 승인 2024.05.25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태화 주필
이레문화연구소 소장
Dr.phil
전 안양대학교 교수
추태화 박사
추태화 박사

독일 나치즘(1933-1945)을 깊이있게 성찰한 역사교양만화 [권력과 신앙: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는 지금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역사의 다원적 의미는 파고들수록 현재를 진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명명하는 선거는 유권자가 주권을 행사하는 엄숙한 행위이다. 그러나 정치 세력에 의해 거짓뉴스, 가짜뉴스가 국민을 혼란케 한다면 시민정신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여 선거를 그르칠 수 있다. 독일 현대사에서 교훈과 경고를 얻어 국가 대계의 선거를 위한 바른 길잡이를 삼고자 한다<편집자 주>

 

 

서언. 분별하라. 선거를 통한 시대 분별력!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구성 요소 중 주권의 주체자인 국민이 직접 비밀투표로 민의를 제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1조 목적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공정선거는 얼마나 바로 지켜지고 있는가. 그동안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선거조작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제 여러 선거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유권자의 분별력을 중심으로 바른 선거자세를 역사에서 찾아 실천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신앙인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1. 깨어라, 혼돈과 미혹에서!

독일 현대사의 기이한 현상 나치즘(1933-1945)은 선거와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면을 보인다. 나치당은 위대한 독일 재건”(3제국)이라는 명목하에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괴물 정권으로 희생자만 5천만 명에 이르게한 사탄적 권력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나치 파시즘이 집권당으로 권력을 잡은 것은 합법적이었다는 것이다. 국민이 참여한 선거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독일인들은 뼈아픈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주권의 주인인 유권자 스스로 권력을 인정해 주었기에. 선거는 악의 정권도 당당히 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시대가 혼란할수록 유권자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2. 알라, 교활한 전술을!

나치당은 선거에서 일방적 주도권을 쥐었다. 괴벨스를 선전부 장관에 앉혀 위대한 게르만족 부흥과 민족국가 건설을 앞세워 온갖 선전선동(propaganda)을 펼쳐나갔다. 여기에 미디어, 문화예술계를 장악하고 흑색선전, 가짜뉴스, 불안감 조성, 편향된 민족주의 운동을 조장했다. 또한 폭력으로 중무장한 행동대인 돌격대(SA)를 동원하여 무차별적 위협과 테러를 일삼았다. 당시 나치당에 반대한 많은 기독교인, 평화주의자, 공산사회주의자, 노동자, 비아리안족(유대인, 집시), 장애자들이 반민족적인 집단이라며 극심한 비인권적인 탄압을 받았다. 교활한 갈라치기가 시대를 지배했던 것이다. 혹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반시대적, 반민주적 이념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지, 명백히 알아야 한다! 죄악이 어떻게 준동하고 있는지 명백히 알아야 한다.

 

 

3. 속지마라, 선전선동에!

나치당은 미디어, 문화예술 분야를 총동원하여 아리안-게르만족의 재건과 부흥을 선전했다. 전국에 보급한 라디오를 통해 밤낮 없이 시국강연을 내보냈고, 감각을 흥분케 하는 행진곡을 쉬지 않고 송출했다. 마취제와 다름 없었다. 민족미술이란 제하에 이념이 가득한 그림을 선보이며, 자유로운 표현주의적 미술은 탈민족화된 예술(entartete Kunst)이라고 공공연히 폄하하였다. 영화도 애국주의 일색이었다. 편협한 조국애와 독일 제국을 위한 헌신, 희생, 죽음까지 미화하였다.

우리 시대에도 좌우의 문화갈등이 여전하다. 문화파시즘(culture Fascism)은 신자유주의 모토 아래 이익 극대화로 치닫는 가운데 소비자를 우매한 대중으로 만들고, 문화막시즘(culture Marxism)은 그 틈에 사회 안으로 교묘하게 파고들어 문화 헤게모니(culture hegemony)를 장악하려 한다.

속아선 안된다. 포퓰리즘에 속아서도 안되고, 달콤한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서도 안된다. 복음에 기초한 비판의식, 역사의식, 시민정신, 미래 비전이 나라와 시대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4. 나오라, 집단 광기에서!

1930년대 독일은 그야말로 갈등과 혼돈이 드리웠다. 나치주의자들과 추종자들, 그 가운데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민족과 국가 이념을 떠받들었다. 이게 살 길이다고 믿게 만든 나치당의 계략에 넘어간 것이다. 실상은 민족, 국가, 지도자의 우상화 작업에 현혹된 것이다. 히틀러는 아이돌처럼 군중 가운데 우뚝 서서 환호를 받으며 정치적 메시야라는 영웅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다. 분별력 없는 군중은 집단 광기(collective madness)에 취해가고 있었다.

우리 시대에도 일부 정치인을 영웅시 하거나, 무비판적 팬덤을 형성하여 세몰이하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집단 히스테리(mass hysteria) 증상이 아닐 수 없다. 오빠부대, 댓글부대가 암약하고, 프로그램 돌리기로 여론을 조장하기도 한다. 정상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흑색 선전이 난무한다. 이 모두가 불법을 자행하는 정신질환 증상이다.

이 히스테리에서 빨리 나와야 한다. 이미 정신건강(mental health)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나님 말씀이 주시는 경고에 마음을 열고 어서 나와야 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미혹에서 빠져나와야 모두가 산다.

 

 

5. 모이라, 복음의 의병들이여!

나치주의가 독일을 어둠의 세력으로 물들여 갈 때, 분연히 일어난 이들이 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미혹에 빠져 나치당과 히틀러를 민족의 구원자처럼 환호할 때, 결연히 반대의 손을 든 이들이 있다. 나치주의에 야합한 신학자들, 목회자들은 성경을 왜곡하거나 신학과 신앙을 호도하였다. 분별력 없는 교인들이 여기에 휩쓸려 갔다. 하지만 이제 반대하여 저항의 목소리를 외친 이들이 있다. 이름하여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 Confessing Church)이다.

M.니묄러 목사, K.바르트 교수, D.본회퍼 목사, P.슈나이더 목사, P.슈츠 목사 등등 나치주의의 비진리성, 야만성, 폭력성을 고발하였다, 신앙인들은 오직 복음에 기초하여 바른 의식과 행동을 취해야 한다! 예언자적 발언을 강하게 선포하였다. <바르멘 신학선언>이 대표적 사례이다. 기독교 저항정신은 나치당의 기만적 허위의식, 과장된 위기의식을 폭로하고, 저항운동을 구체적으로 펴나갔다. 복음의 군사들이여 모이라! 믿음의 저항군들이 독일 전국에서 일어난 사실을 역사는 증언한다. 비록 나치의 절대 무력을 축출하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그 정신은 독일을 지켰다.

 

 

6. 뭉치라, 광야의 한복판에서!

나치당은 조직을 철저하게 장악하였다.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는 구호는 거짓이었으며 오로지 정권 탈취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독일 전역의 직장, 학교, 가정, 심지어 교회까지도 일일이 통제하였다. 그 작업을 위해 모든 사회 조직을 나치당원화, 획일화 하였다. 한 사람도 그 조직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독일은 나치 독재의 감옥이 되어버린 상황이 되었다.

지금 우리 상황은 어떤가? 아름다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남녀노소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문화막시즘 전략이 사회로 파고들어 갈등과 분열을 멈추지 않는다. 성벽을 허무는 여우를 잡으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된다. 더 큰 파국이 몰려오기 전에 멈추게 해야한다.

뭉쳐야 한다. 진정한 인간애와 나라사랑, 이웃사람으로 뭉쳐야 한다. 낮은 곳, 낮은 자들에게다가오신 구원자 예수의 심장을 품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눈 앞의 이익을 떨쳐버리고 견리사의(見利思義)해야 한다. 복음은 강권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 실존의 광야에 서 있으나 우리는 진리로 하나이다.

 

 

7. 꾀하라, 선한 지략과 전략을!

나치당은 나치 성향의 기독교인들을 종용하여 친나치 교단을 설립하게 했다. 이름하여 제국교회. 이들은 교회는 국가에 헌신해야 한다는 주장(실용적 기독교, positives Christentum)을 펼치며 국가 기관의 하수인으로 행세했다. 나아가 나치주의 신학을 만들고, 정통 교리를 왜곡하며 선전했다. 친일파와 다를 바 없었다.

폭력으로 무장한 정권 아래 믿음의 백성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목회자들은 목사긴급동맹이란 단체를 결성하여 복음적 저항을 행동하고, 이후 고백교회로 모인 이들은 성명을 발표한다. 주 예수께서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26:52) 하셨으니 비무장 비폭력의 방법으로 무도한 저들을 대해야 하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먼저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잘못된 교리를 거부한다...”(바르멘 신학선언 중에서)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124:8).

 

 

8. 나가라, 치열한 전선을 향해!

나치즘과의 싸움은 다원적이었다. 선거로 쟁취한 정권이라 시민들은 할 말이 없었다. 한쪽에서 나치당에 열광, 환호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저항(Widerstand)이 계속되었다. 나치주의와의 전선은 이념 전쟁에서 신앙 차원으로 넓혀졌다. 즉 영적 전쟁이었다.

나치즘에 저항한 목회자, 신학자들은 나치주의는 사탄의 성육신(incarnation)’이라 판단했다. , 사탄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어떤 인격일까?라는 의혹에 대한 결론이었다. 나치주의는 비인간적, 반인간적, 반신앙적 이념이었다. 사이비 영지주의 같은 속성이 있었기에 영적 전쟁이라 부를 만큼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의 전투가 치열했다. 그들은 공중 권세 잡은 자에 종속되어 지상 권세 잡은 자로 행세했다. 사악한 죄가 일상에 만연하여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어갔다. ‘사탄의 자기부정이 사상에서, 정책에서 퍼져가더니 결국 이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킨 것이다.

기독교인은 나치당원이 될 수 없다고 공개 비판한 R.마이어 신부는 감옥에 갇히고, 반나치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갇힌 P.쉬나이더 목사는 그곳에서 순교하고, 본회퍼 목사는 저항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구금 당하여 고초를 겪다 담대히 순교의 길로 들어갔다. 바른 신앙과 교계에 대한 나치 탄압이 극심해져갔다. 일상이 치열한 전선으로 변해갔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24:15b).

 

 

9. 파하라, 견고한 적진을!

나치당은 처음부터 세상의 권세를 잡기 위해 공중의 권세 잡은 자”(2:2)에게 속하여 온갖 악한 궤계를 다 동원하였다. 그들은 정치의 종교화, 종교의 정치화라는 대중운동 형식을 활용하여 대중조작(manipulation)을 감행하였다. 나치주의라는 시대정신(Zeitgeist)은 대세가 되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균형잡힌 분별력이 없으면 진실과 허위를 분별하기 힘들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였다. 온 나라가 나치화 되어 가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나치당에 복종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고백교회는 하나님 말씀에 서서 결연히 저항하였다. “국가가 인간의 유일하고 전적인 질서가 될 수 있으며, 교회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뜻있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크리스찬들이 저항의 대열에 함께 하였다. 미혹의 영이 횡행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이라는 믿음으로 영적 전쟁과 현실적 전선에 나섰다. 악마적 나치 이데올로기와의 전쟁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이를 격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고후 10:4)이었다. 이런 상황이 현재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대를 미혹하는 모든 권세는 무너질찌어다!!

 

 

10. 취하라, 최후 승리를!

나치당은 나라를 결국 전쟁(2차 세계대전)에 휘몰아 넣었다. 독일 국민은 군인으로, 전쟁 물자 생산공장으로 강제로 끌려나갔다. 악한 이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비인간적 탄압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악인은 자신들이 만든 함정에 빠진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9:16).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141:10a)

전쟁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19455월 연합군은 나치의 수도인 베를린을 함락시켰다. 히틀러는 애인 에바 브라운과 자살로 비극적 생을 마감했고 부관이 그들의 시신을 불태웠다. 나치 수뇌부들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사형 및 중형을 선고 받았다.

고백교회와 가톨릭계의 저항은 전후 독일의 재건과 명예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만약 복음에 굳게 서서 저항하지 안았더라면, 나치 지배의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부끄러운 역사로 남았으리라. 그러나 복음에서 용솟음 친 진리수호와 저항정신은 현재까지도 독일의 명예를 지키고 있다.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는 복음의 분별력과 저항, 그리고 영적 전쟁은 승리를 승리답게 해주고 있다! “...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5~39).

 

 

승리의 십계명_ 오판의 혼돈에서 진리로 분별하기

1. 깨어라. 혼돈과 미혹에서! 2. 알라. 교활한 전술을!

3. 속지마라. 선전선동에! 4. 나오라. 집단 광기에서!

5. 모이라. 복음의 의병들이여! 6. 뭉치라. 광야의 한복판에서!

7. 꾀하라, 지략과 전략을! 8. 나가라. 전선을 향해!

9. 파하라. 견고한 적진을! 10. 취하라. 최후 승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본사/임원실/총무과/편집위원실 : 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 951 (갈현동 1-25)
  • 편집국 제2취재기자실/디지털영상미디어팀 본부 : 서울중랑구 면목로 44길 28 아람플러스리빙
  • 편집국 제3취재기자실/석좌기자실 :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동 182-6, 302호
  • 이사회실/기획취재연구실/논설위원실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현로 64
  • 사업부실 : 서울 금천구 시흥동 1010번지 벽산APT 113동 1109호
  • 편집국 : 02-429-3481
  • 광고국 : 02-429-3483
  • 팩스 : 02-429-3482
  • 이사장 : 민찬기
  • 회장 : 이상대
  • 발행인 : 양진우
  • 편집인 : 최영신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인재
  • 인쇄인 : 이병동
  • 법인명 : C헤럴드(CHERALD)
  • 제호 : 양심적지성인기자집단 C헤럴드(CHERALD)
  • 등록번호 : 서울 아 52117
  • 지면신문 등록번호 : 서울 다 50572
  • 등록일 : 2019-01-27
  • 발행일 : 2019-02-11
  • 광고비 : 국민은행 018501-00-003452 시헤럴드(CHERALD)
  • 후원·구독료 : 국민은행 018501-00-003465 시헤럴드(CHERALD)
  • 양심적지성인기자집단 C헤럴드(CHERALD)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양심적지성인기자집단 C헤럴드(CHERALD).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ublisher@c-herald.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