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이념을 초월하는 복음
[특강] 이념을 초월하는 복음
  • 이근창(영상미디어제작팀) 기자
  • 승인 2020.04.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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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복음을 유한한 인간 천박한 이데올로기로 대체 시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백종국 명예교수(기독교윤리실천연합 이사장ㆍ백종국(경상대학교)

 

2대 비극에 대하여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는 종종 안타까운 결말을 자초하곤 한다. 무지의 비극과 독단의 비극이 그러한 사례다.

1980년대 초 유학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연구소에 출근하여 조간신문을 폈는데 하나의 ‘계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디스토마”라는 소아과 의사의 칼럼이었다. 간디스토마에 감염돼 죽게 된 아기에 관한 실화였다. 삼대독자인 그 아기가 홍역이 걸렸는데 할머니가 옆집 아줌마의 조언을 듣고 생가재 즙을 먹였단다. 추운 겨울날 산천을 헤매면서 잡아 온 가재였으니 죽음을 무릅쓴 할머니의 사랑이었으리라. 그러나 결과는 손자의 죽음이었다. 참으로 비참하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이야기가 나의 유학 목표를 ‘빨리 박사학위 취득하기’에서 ‘간디스토마 잡아내기’로 바꾸어 놓았다.

1990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지하철의 스포츠 신문 지면에서 두 번째 계시를 보았다. ‘물에 빠진 예수쟁이’라는 콩트였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라고 확실히 믿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이 사람이 어쩌다 물에 빠졌다. 지나가던 행인이 줄을 던져주었고 인명 구조반의 모터보트가 왔는데도 거기에 의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해안 경비대의 헬리콥터가 줄사다리를 내렸지만, 그는 “오직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라고 말했다. 결국 죽어서 천당에 가게 되었다. 마중 나온 예수님께 그는 자신의 굳건한 믿음을 말하면서 왜 구원해 주지 않으셨느냐고 항의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행인도 보내주고, 모터보트도 보내주고, 그 동원하기 힘든 헬리콥터까지 보내 주었는데, 도대체 나보고 무엇을 더 하라는 것이냐!”

한국 교회의 위기: 이념이 훼손하는 복음

요사이 우리 한국 교회가 이러한 무지와 독단의 비극에 빠져들고 있지나 않은지 심히 우려스럽다. 특히 어설픈 정치 이념으로 복음을 훼손하는 모습이 심해지고 있다. 이념 혹은 이데올로기로 복음을 대체하려는 것은 아파트에 사는 바퀴벌레 안에 아파트를 욱여넣으려는 것과 같다. 영원하고 무한한 복음을 일시적이고 유한한 이데올로기 속에 욱여넣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전광훈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시국 선언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2019년 6월의 시국 선언을 보면 많은 이데올로기 관련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종북화, 공산화, 주체사상, 주사파 간첩, 사회주의 혁명 등이다.

정치학자의 눈으로 볼 때 한기총의 시국선언은 참으로 요령부득하다. 상식과 논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가 정말 공산주의를 추구한다면 상식적으로 최소한 생산수단의 국유화 정도는 언급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이러한 주장을 했다는 소리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한기총의 시국 선언에서 증거로 언급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 교수를 존경한다고 말한 점, 원자력 발전을 폐기한다고 한 점,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추진한 점, 그리고 대한항공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 점 등이다. 사실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이 내용들이 공산화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이처럼 부실한 이데올로기적 주장들이 마치 복음인 것처럼 선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예로서, 얼마 전까지 광화문에서 개최되었던 한기총 집회를 들 수 있다. 그들 스스로 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주장하면서 찬송과 기도와 설교와 헌금의 순서를 진행했다. 이 부실한 내용들이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고 청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회를 삼가자고 하니 이 집회를 하나님이 지켜 줄 것이며 설사 감염되어 죽어도 좋다고 했다. 따뜻한 아파트 안에서 하나님 섬기며 잘 살다가 갑자기 추운 광장에서 바퀴벌레를 숭배하는 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먼저 이념, 혹은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데올로기(ideology, 이념)란 특정한 이상의 달성을 목적으로 동원되는 허위의식 체계이다. 왜 허위의식이냐 하면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이상은 이 지상에서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데올로기는 산업혁명기의 유럽에서 형성된 후 근대 세계를 풍미하고 있다. 이들은 19세기 말 서구에서 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수입되었다. 한국 사회의 토착화 과정에서 개론화, 탈맥락화, 순서 도치, 냉전적 선택 등의 수정 및 왜곡이 발생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개념들을 사용할 때는 당연히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긍정적 측면으로 볼 때 이데올로기란 이상 사회를 향한 인간 의지의 구현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힘을 갖게 되자 인간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와 풍요와 정의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3대 이데올로기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는 각각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카를 마르크스의 저작을 통해 정리되고 계승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시대의 질곡을 분석하고 이상 사회를 향한 분석 단위와 대안 이론과 최종 목표를 체계화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따르면 세계적 복지가 극대화된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을 계승한 수많은 파생 이론들이 뒤따라 일어나게 되었다.

이 분류는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철학, 문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도 각자 고유하게 발달된 많은 이데올로기들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수입에 있어서 번역에 주의해야 한다. 영어로 “~ism”으로 끝나면 “00주의”로 번역하고 있으나 같은 용어가 서로 달리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humanism을 들 수 있다. 보통 인문주의라고 번역되지만, 인도주의 혹은 인본주의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 일부에서 humanism을 인본주의(人本主義)로 번역하고 여기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신본주의(神本主義)라는 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교회는 인본주의에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결국 교회는 anti-humanism 즉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비인도적(非人道的) 단체란 말인가? 번역을 잘못해서 발생하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이다. humanism은 ‘인도주의’로 번역하고 인본주의니 신본주의니 하는 어설픈 조어들은 버리는 게 좋다.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또 하나의 특징은 대부분이 대립적 개념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유주의는 권위주의, 개인주의는 집단주의, 좌파는 우파, 진보는 보수라는 대립 개념이 있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주의이다.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당연히 중간도 존재한다. 예컨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양자의 장점을 혼합하려는 혼합경제가 존재한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라는 표현이 말하듯,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노골적으로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국가는 찾기 힘들다. 대세는 혼합경제이며 이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헌법제정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바로 그 경제체제이다.

현존하는 주요 이데올로기들의 목적은 평화롭고 풍요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이다. 물론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불의한 목적을 추구한 이데올로기들도 있었다. 파시즘이나 나치즘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 파멸의 운명을 맞이했다. 문제는 살아남은 이데올로기조차도 처음의 순수한 목적을 상실하고 점차 악하게 변질되곤 한다는 점이다. 이념의 경쟁 속에서, 외부의 공격을 극복하고자, 매개의 변증법 때문에, 지도자의 권력욕을 강화하려고, 혹은 무지 때문에 끊임없이 이러한 변질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이념을 수용하려면 초기의 순수했던 모습과 함께 역사적으로 변질된 모습도 함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들의 발달로 우리의 삶이 풍요해졌으나 동시에 더욱 위험해졌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복음과 이데올로기

김세윤 교수의 정리에 따르면, 복음이란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다.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과 질곡을 뛰어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나라이며 영생과 풍요의 나라이다. 이 소식의 핵심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직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증거는 삶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이 복음적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김세윤 교수의 설명이다. 적지 않은 한국 교회들이 “싸구려 은혜”를 팔고 있다. 이 교회들의 가르침은 구원을 실천 즉 윤리와 분리하고 있다. 의인 됨(justification)을 무죄 선언됨(acquittal)으로만 가르치고 있다. 복음을 세속적 욕망의 달성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 온전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의인으로서의 삶, 즉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가르치고 강조해야 한다. 삶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실천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 나라에 관한 소식은 모든 시대, 모든 사상, 모든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는 창조 세계 안에 있고 창조 세계는 복음 안에 있다. 현실의 어느 이데올로기든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에 더 가까울수록 복음적인 것이고 멀수록 사탄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므로 교회는 모든 사상들이 녹여져 어울리는 용광로라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좌파나 우파나 중도파일지라도 교회 안에서는 한 형제자매이다. 이데올로기 투쟁은 그것을 동원하여 권력을 쟁취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 놓는 게 좋다. 무한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유한한 인간의 천박한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바퀴벌레 안에 아파트를 욱여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힘들여 설명한다고 해도, 이미 이데올로기로 한껏 강퍅해진 마음을 돌이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여기에도 매개의 변증법이 작동된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지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수단이 목적이 되어 헤어 나오기 힘든 이해관계의 사슬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빨리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게 하고 서로를 하나 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기를 기대해 본다.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두고 페이스북에 게시된 높은뜻덕소교회 오대식 목사의 <참회의 기도> 중 일부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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