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다 순교한 아펜젤러 선교사를 추모하는 예배가 지난 11일 정동제일교회(천영태 목사)에서 열렸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총무 오일영 목사의 인도로 김동수 장로(정동제일교회 역사편찬위원장)의 기도, 서명석 권사(배재학당 이사)의 성경봉독 후 배재동문 합창단인 아펜젤러 합창단의 찬양이 있었다.
빌립보서 2장 17-18절을 본문으로 ‘마지막 소원’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이 철 감독회장은 “유일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전하고, 밝히기 위해 살아오신 분이 아펜젤러 선교사님이시다.” 면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과정 가운데 이 나라의 문화가 바뀐 것임을 성도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감리교회는 진리의 문제, 이단의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했으나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면서, “우리 감리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유지를 받들어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용납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그 분의 삶이 빨리 끝난 것이 아쉽다”면서도 “마지막 순간 군산 앞바다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진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기억하며 후대의 신앙인들이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원경 목사(배재동문목자회 회장)의 연혁 소개, 학교법인 배재학당 조보현 이사장의 추모사가 진행됐다.
조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성경말씀을 따라 17년간 이 땅에서 자신을 헌신하셨다”면서,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선교에 헌신하여 복음전파와 더불어 이 땅의 유교적 신분질서, 사농공상의 차별, 여성차별 등의 구조적 문제를 깨뜨리기 위해 헌신하셨다”고 추모했다.
또 조 이사장은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복음전파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역 모두를 중요시 하셨다”면서, “이 땅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와 교육을 통한 자유와 해방의 사역을 위해 헌신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선교사님의 선교적 헌신 위에 우리도 최후의 순간까지 따르겠다”며 다짐했다.
이어 30명의 대표자의 추모 헌화 진행 후 천영태 목사(정동제일교회)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 선교사는 1858년 2월 6일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출생하여 1884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 후 1885년 부산을 거쳐 인천 제물포에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동반 입국했다. 이는 복음전파를 위한 최초의 선교사 입국으로 한국교회사는 물론 한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그는 1885년 8월 배재학당의 전신인 영어학교를 시작했고, 1886년 6월 8일 영어학당인 배재학당을 개강했다. 이를 기념하여 6월 8일은 배재학당의 개교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1887년 2월 21일, 고종황제가 '培材學堂'(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 오늘날 배재학당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이게 됐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8년부터 배재학당의 교장으로 근무, 구한말 조선의 교육선교 분야와 한국사에 있어 근현대교육의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1885년 10월 11일 아펜젤러 목사의 집례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을 거행했고, 이는 오늘날 정동제일교회의 창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이렇게 구한말 조선에서 복음전파와 교육선교에 최선을 다하던 아펜젤러 선교사는 1902년 6월 11일 성경번역 모임 참석 차 목포로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선박충돌사고로 인해 44세의 젊은 나이로 순직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배 안에 있던 다른 이들을 구조하다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