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팬데믹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 김병중 기자
  • 승인 2021.03.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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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s the judgment of God?
정일웅 박사(총신대학교 전 총장·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장·C헤럴드 논설위원)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학교 총장·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장·C헤럴드 논설위원)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학교 총장·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장·C헤럴드 논설위원)

서언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실체가 된 지 벌써 한해를 넘기고 있다. 여전히 그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으며, 그 위세에 전 인류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백신 개발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변형 바이러스 형태의 팬데믹이 과연 온전히 다스려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의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에 있으며, 이 때문에 기후변화는 기후위기의 심각성 문제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산업화가 추진된 이래, 전 세계가 경제발전과 함께 온통 자연을 이용한 생산 활동에 집중하였고, 이에 따른 과도한 에너지 사용은 마침내 지구 기온을 상승시켰으며, 그것이 오늘날 기후위기를 초래하게 된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지구의 위기상황과 관련하여, 필자는 기후위기와 판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인가?’란 종교적인 질문을 제기해 보려고 한다. 중세기 유럽에서는 페스트 팬데믹 창궐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었을 때, 그 질병의 주된 원인은 하나님의 징계요, 심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그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징계요, 그 시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보복으로 믿었던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시대는 기독교가 유럽을 주도하는 기독교의 전성시대였기에 그러한 생각이 의미를 지닐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문제를 두고 과연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오늘날 사람들의 인식도 대체로 천재(天災)로 인식하기보다, 인간 스스로 초래한 인재(人災)로 보는 경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재를 뒷받침하는 이론은 자연과학자들에게서 이미 인류세”(Anthropocene)란 개념을 통하여 합리화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자연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의 행위가 지구환경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 결과가 오늘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위기초래의 원인이라는 해명이 더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뿐만 아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의식 또한 모든 경험적인 일들이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이지, 실제로 천재(天災)와 관계된 인식이나, 신 존재와 관계된 종교적인 인식에서 참으로 멀어져 있는 분위기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과연 하나님의 심판인가?’ 란 질문은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하는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질문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 이유는 오늘날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인간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과 깊이 연관된 것들임을 깨우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는 기독교의 세상을 향한 선교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러한 관심 때문에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인가란 질문에 신학적인 대답을 제시해보기를 원하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욱이 필자는 천재(天災)와 인재(人災)의 깊은 연관성을 전제하여, 그리고 또한 천재(天災)의 개연성을 전제하여 신학적인 논의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의 전체 내용은 먼저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근본문제가 과연 어디에서 기인 된 것인지? 그 원인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과 연관된다고 말할 수 있는지? 특히 그 연관의 3가지 신학적인 개연성을 전제하여 논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연성의 전제에서 인간 스스로 초래한 인재(人災)로서의 책임성을 밝혀보려고 한다.

 

 

1.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초래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1)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의 심각성

오늘날 지구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위기에 관한 근거는 여러 자연 과학자들에 의하여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었으며, 특별히 유엔 산하에 설치된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세계기후기구’(WMO)1988기후변화에 관한 각 나라의 정부간 패널’(IPCC)이란 단체를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기후변화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이래로 이 기구(IPCC)는 인간의 활동이 초래하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구체적인 통계로 제시하며,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을 수행해왔다.

대체로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인류세란 용어를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것은 2000년에 이르면서 네델란드의 화학자요 대기과학자인 파울 그뤼첸(Paul Gruetzen)이 인류세(Anthro- pocene)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여, 전 세계가 위협받고 있는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과학적인 합리성의 근거로 제기하였고, 인간이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에 큰 역할을 하게 됐다. 즉 기후위기의 문제는 인간이 초래한 인재(人災)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전 세계의 인류가 지구환경에 영향을 미쳐서 새로운 지질시대를 형성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와 같은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이산화 탄소의 증가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문제는 산업혁명이 시작될 무렵(18세기)의 통계보다 오늘날 두 배 이상 증가하게 된 것이 큰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해줬다.

이러한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거기서 에너지를 얻으면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인류세(인류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의 증가는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여 적정선(안정선/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지구는 찜통 현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기후위기의 문제는 이산화탄소의 축적보다는 오늘날 시베리아의 동토층의 빙하 속에 쌓여 있는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추정하는 초본류의 사체이다. 지구온난화는 이러한 빙하층을 녹여냄으로써 그 안에 쌓인 초본류의 부패로 인하여 이산화탄소보다 수십 배 강한 메탄이 대기 중에 방출된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또한 남극과 북극에 쌓여 있는 빙하는 그간 태양에너지를 반사하는 거대한 거울 역할을 해왔는데, 북극해가 녹고, 남극에서 커다란 빙산들이 떨어져 나오면서 얼음이 쌓였던 자리에 어두운 색깔의 바닷물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은 태양에너지를 반사하던 역할 대신에 바다에 흡수되어, 바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와 결합하여 물의 온도가 상승하게 되며,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예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산화 탄소의 증가는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켜 전 인류와 지구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심각한 생존의 위기와 멸절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예견하게 됐다.

이러한 자연 과학자들의 문제 제기와 함께 IPCC는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 먼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한 지구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을 만들게 됐으며, 탄소 배출의 적정 수치를 관리하기 위해 1997년 교토에서 제3차 당사국 총회를 개최했고, 소위 교토의정서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됐다. 여기서 처음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각국의 책임과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게 됐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부시 행정부의 비협조로 인하여 교토의정서의 역할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으며, 2015년에 새롭게 국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추진된 것이 파리협정이라는 것이다. 이 파리협정서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감축 의무를 달리했던 안을 포기하고, 그 대신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하여 시행하는 자발성을 전제한 책임을 약속받게 됐다. 구체적인 것은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으로, 가능한 1.5도 이하에 포인트를 두고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019108일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IPCC의 제48차 총회는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것은 1.5도를 목표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해야 하는 것과 2050년까지는 탄소 배출량을 제로 상태에 이르도록 목표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50년까지 1차 에너지 공급의 50-60%, 전력 생산의 70-85%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 에너지로 공급할 것을 목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전한다.

이러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2019년 여름 스웨덴의 16세 소녀인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지구의 기후위기에 대한 1인 시위를 감행함으로써 전 세계인을 향하여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게 됐다. 특히 20199‘UN의 기후 행동 정상회담에 참여하여 기후위기를 직시하지 않는 전 세계의 각국 정상들을 꾸짖는 일까지 감행하게 됐다.

여기서 우리는 기후위기 상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인식하게 되며, 이러한 위기극복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짊어져야 할 책임을 느끼게 되며, 각 나라 정부의 정책 수행책임이 또한 막중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2) 기후위기의 자연재해 현상과 인간의 책임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재앙의 심각성은 전문가들에 의하여 기후변화가 범지구적이며, 그 영향이 연쇄적이라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20191월 영하 40도의 유례없는 한파가 미국 시카고를 휩쓸게 되어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으며, 일리노이주는 재난 지역으로 선포됐던 일이다. 같은 시기에 호주에서는 영상 46.6도를 넘는 폭염이 지속했으며, 폭염으로 인하여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몇 개월 후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서는 45도 이상의 폭염으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역시 동아프리카 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시달렸고, 육지의 얼음이 줄면서 남아시아는 물론 서유럽에서도 수자원 부족 현상으로 고통 받았다. 북극과 그린랜드와 알프스와 히말리아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현재 해수면이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파와 폭염, 폭설과 태풍, 가뭄과 홍수를 비롯한 이상기후는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이며, 동시다발적인 재해의 발생이 벌써 예고되어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와 위기 현상은 특히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지하수와 수자원이 고갈되어 산림이 초토화되고 있으며, 홍수나 해수면 상승으로 재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곡물 생산이 급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곡물 가격의 폭등으로 경제 타격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분쟁과 난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해수면의 상승은 향후 50년 이내에 수몰 위기에 놓인 몰디브에서는 주민 37만 명이 자국을 떠나기를 원하고 있으며, 투발루는 식수와 농경지 오염으로 주민들이 현재 다른 나라로 이민 수속을 밟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기서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기후변화는 기본적으로 자연재해로 여겨지지만, 역시 그것들은 인위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산림파괴와 온실 가스방출은 기후변화의 속도를 앞당겨 기후위기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모습인데, IPCC가 예고해 준 보고서는 현재 지구의 기온이 1도 상승한 온난화 현상을 그대로 방치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지속하게 되면, 2100년에는 지구 평균 기온이 3.7도 상승하게 되며, 해수면은 52-98cm 상승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의 연구는 한반도에서도 평균 기온이 6도까지 상승하며, 2100년에는 해수면의 상승 폭은 2m에 이를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므로 기후변화와 위기문제는 자연의 정상적인 현상으로서의 천재(天災)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인간의 책임을 요구하는 인재(人災)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3)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근본 원인과 문제성의 심각성

팬데믹(Pandemic)은 전 세계적으로 퍼진 대형 전염병을 일컫는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20203월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역사상 3번째 발생한 거대한 팬데믹임을 선언했다.

그러면 코로나 판데믹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대체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태계 교란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생태계 교란설은 감염학자들에 따르면,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의발생과 연관된 것이며, 또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강력한 경제활동과도 깊이 연관된 것으로 판단한다. 인간이 초래한 생태학적인 압력과 혼란 때문에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과 접촉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으며, 동시에 인간의 기술과 행동 때문에 병원체가 유례없이 넓고 빠르게 퍼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팬데믹은 기후위기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초래하게 된 산물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생각하면 코로나 팬데믹의 근본 원인 역시 기후위기문제와 깊이 연관된 일이며, 그간 자연 과학의 연구가 발전시킨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적인 이기성이 서로 결합하여 오늘날 경제성장의 대단한 발전을 이루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행위는 기본적으로 자연 피조물을 이용한 결과로써 경제성장의 가속화는 마침내 자연 생태계의 혼란과 질서를 파괴하는 상태에 이르게 됐으며, 또한 과잉에너지의 사용은 자연의 기후변화(온난화 현상)에 영향을 크게 미쳐, 마침내 각종 바이러스의 진화와 변종을 촉진하게 됐으며, 그 결과 인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재앙적인 피해를 입게 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시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자연재해로 여겨지면서도, 여전히 인간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인재(人災)에 속한 일이 분명함을 깨닫게 된다.

 

2.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과연 하나님의 심판인가?

 

필자는 이 논문의 서두에서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인지의 대답을 얻기 위해서 천재와 인재의 깊은 연관 속에서 숙고해야할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임을 전제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이 시대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이러한 의미를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 심판의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한 가지 더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은 우리 기독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며, 그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며, 또한 그가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며, 언제나 그의 선하신 목적을 위해 역사를 인도하시며, 섭리(攝理,Providencia Dei)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의 은혜 안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며,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일꾼으로서 기독인의 동참과 그 나라는 인류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질 완성된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과도 깊이 연관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믿으며 기다리는 종교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제들과 함께 지금 전 세계가 당면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주목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 심판의 의미와 연관된 3가지 개연성의 의미를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연성의 전제에서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얼마나 인간 스스로 초래한 인재(人災)인지를 깨닫게 되며, 이러한 인재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인간이 대처하며 행동해야 할 것인지? 그 책임의 방향과 과제를 확인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1)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식되는 3가지 개연성의 근거

(1)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역사적인 기독교의 신앙고백서는 대부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고백 한다. 그분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가 만든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며, 다스리시며, 인도하시며 섭리하심을 또한 믿는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특히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의 약속은 역사적 상황의 그 어떤 변화 관계에서도 불변하며, 끝까지 약속(하나님의 언약)된 목표로 인도하시며, 그 모든 일에 섭리하심을 고백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攝理, Providencia Dei)에 관한 것인데, 역사적인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 제27문은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그 질문의 대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섭리란 어디에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인데, 그는 이를 통하여 마치 그의 손으로 붙잡으시듯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을 지탱시키시고, 식물과 풀들, 비와 가뭄, 풍작과 흉작,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자와 가난, 양식과 음료 등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다운 손길로 임하도록 그렇게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하나님 섭리(攝理)의 물음에 관한 대답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운 분으로, 그의 피조물들을 언제나 새롭게 찾아오시어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생명을 유지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일은 그의 섭리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전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문제도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놓여 있는 일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신앙은 모든 것이 결정되어있는 것처럼 운명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자발적인 자유로운 행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신적인 개입을 말하게 된다.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하나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잠재성과 새로움의 가능성, 자유와 창조적인 활동을 존중하여, 그의 모든 가능성이 실현되도록 오랜 기다림 가운데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도록 하나님이 능력을 미치게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섭리에 대한 신앙은 미래적으로도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종말론적으로 예고된 새로운 생명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약속된 메시아의 기다림의 표현과 희망이 포함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처럼 여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들은 하나님의 섭리(미리 내다봄, 염려하고 돌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며, 인간 자신의 능력을 통한 신뢰에 더 의존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에서도 우리 기독인들은 인간의 악한 세력과 악의 유혹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면서 인내로 약속된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견지해가야 할 사명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 섭리의 신앙에 따라, 지금 전 인류에게 비극적인 사건으로 다가와 있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며, 비록 인간이 저지른 실수와 과오와 함께 엮어져 있는 인재(人災)이며, 그 때문에 역시 하나님의 심판과 경종의 의미를 지닌 섭리 가운데 있는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인가? 란 질문에서도 여전히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전제하여 그의 장중에서 발생하게 된 일로 여겨야 하며, 종말론적으로 중요한 교훈과 의미를 지닌 인간의 책임적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일임을 기억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2)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과 자유의지의 남용에 따른 관계성과 책임성의 의미

필자는 잠시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대체로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은 3가지 특성(가치)을 가진 것으로 이해한다. 첫째, 이성적 사고의 능력이며 둘째, 자유의지의 행사에 대한 자질과 능력이며 셋째, 창조세계의 신적 대리인의 역할의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신 형상의 특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남용함으로써 타락한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부여된 신 형상의 온전한 특성이 상실되었거나, 장애를 입게 된 것으로 이해하며, 현대신학은 창조주와의 관계 단절, 또는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의 본래의 의(Iustitia orginalis)가 상실된 상태를 더 잘 말해 준다.

그 이래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그 누구의 통제와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사고하며, 자유로운 의지의 선택적 결단에 따라 행동하는 무책임한 존재로 살게 됐다. 17세기 유럽의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는 타락한 인간, 즉 신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해 준다. “원죄를 범한 직후, 이성은 어두워져, 은폐되었고, 참된 인식의 척도로서 그 기능은 온전히 수행할 수 없게 되었으며, 신적인 대리자로서 통치의 책무 또한 망각 되었으며, 창조주의 뜻을 외면하고, 자아 중심적 사고와 자유의지의 선택에 종속된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파기로서 인간의 타락인 원죄를 의미한다. 실제로 인간의 원죄는 신적 언약의 파기행위로 이해하며, 하나님을 떠나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배회하고 방황하는 인간을 구원하려고 신 형상의 원형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어 상실된, 또는 관계가 단절된 형상이 회복되는 기회를 부여해 줬다. 그 형상의 중보자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코메니우스는 역시 인간은 본성의 내면에 3가지 본성의 씨앗을 지니고 탄생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것은 지성, 덕성, 경건성이며, 지성(知性)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 만물에 관하여 감각과 이성을 통하여 알게 되는 지적인 능력(학식)이며, 그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성과 책임성을 감당하는 자질이며, 덕성(德性)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요구되는 윤리 도덕적인 자질로서 이웃과의 관계성과 책임성을 감당하는 능력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경건성(敬虔性)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 또는 신앙(信仰)으로, 역시 하나님의 관계성과 책임성의 자질과 능력으로 이해했다.

이것들은 역시 코메니우스에 의하면 인간이 가진 3가지 선천적인 욕구로 이해됐다. 즉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게 하는 오늘날 전인 구원과 전인교육의 실제적인 과제(목표)로 제시됐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형상이란 결국 자기의 원형상의 완전함을 실제로 닮게 되는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셨듯이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라(19:2)]고 하신 인간의 신적 거룩성과 관계된 것이며, 이러한 선천적인 3가지 욕구는,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들과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모든 것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일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3가지 욕구를 일반적으로 교육/교양(eruditio), 도덕/윤리(virtus/mores), 종교/신앙(religio/pietas)의 관계로 이해하게 된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인간 존재가 얼마나 창조주와 창조세계(자연)와 인간(이웃)과 함께하는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면 인간은 결코 창조주를 떠나 마음대로 사고하며, 자유롭게 선택하며 사는 존재가 아닌, 그야말로 관계성과 책임성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즉 인간이 원하는 이성적 사고와 행동하려는 자유로운 선택의 의지는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작동되어야 하는 얼마나 책임성을 지닌 것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기후위기문제와 코로나 팬데믹은 창조주와 무관한 인간적인 사고와 자유 의지적인 행동의 결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 과학자들의 해명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강력한 경제활동과 생태계의 교란이 문제이며, 자연의 파괴행위와 함께 거기서 야생동물에 의한 변종 바이러스의 감염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생산 활동에서 지나친 에너지 사용이 기후위기의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주와 창조세계(자연)에 대한 관계성과 책임성을 외면한 행동의 결과로 이어져 온 원죄와 관계된 문제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 해명과 관련하여 필자는 지금부터라도 인간이 창조주와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그것을 전제한 이성적 사고와 자유의지 선용의 책임성이 먼저 자연과학자들에게 각인되기를 바라며, 인문사회학자들과 산업기술인들을 비롯하여 기업인과 경제활동과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이르기까지,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삶의 안전을 책임지고 섬기는 정치인들에게까지 각인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사실을 깨우치는 복음 선교적인 노력이 진지하게 병행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에서 인간은 창조세계의 경작과 관리와 보전의 책무를 힘쓰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여전히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미로에 처한 환경이 될 것이며, 또한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의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위협적인 혼란은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지구에서 생존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심판의 의미를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역사의 종말을 향한 여정에서 스스로 겪게 된 시련과 위협적인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과 경종의 의미

구약성경에서 전쟁과 기근이나 질병에 관한 말씀들이 자주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언제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살 때, 불순종한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경고요, 그들이 받게 되는 저주와 심판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신적인 행위의 방편으로 여겨졌다. 특히 하나님은 그의 택한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까지 긴 역사적 과정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의 죄에 대한 경종과 징계와 심판이 행하여진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기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부르심(구원)과 관계된 수단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이러한 하나님 심판이 보여주는 언약 백성에 대한 종말론적인 경종의 의미는 구약성경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즉 하나님은 그의 언약 백성에게 경종뿐 아니라, 직접적인 전쟁과 기근과 질병의 재앙을 통하여 심판하신다는 말씀들이며, 또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의 땅을 고치며 회복하는 하나님 섭리의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하면 전염병과 기근과 전쟁을 통한 재앙인 하나님의 징계 위협은 위협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회개의 경종과 각성의 의미를 지닌 것임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종과 각성의 의미는 이제 새 언약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명과 사역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예수에게서 확인되는 심판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서 나타났던 하나님 심판의 매우 위협적인 모습과는 판연히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나타났던 무섭고 위협적인 심판의 하나님보다, 오히려 전혀 상반된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게 해주는 일이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도 불변적이며 동일한 하나님의 행위로서 경종과 각성의 의미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예수는 실제로 옛 시대를 마감하고, 하나님의 새 언약의 시대를 열어준 전 인류구원의 메시아였다. 그것은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천국 복음의 선포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은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언약 백성으로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보여준 복음의 황금률이기도 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은 의인을 부르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는 일에 있었다. 선천적인 질병도 죄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것임을 깨닫게 해줬다(9:1-4). 그는 죄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제물을 들고 성전으로 가게 하신 분이 아니라,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육신의 질병뿐 아니라, 죄 용서까지도 직접 선언하신 분이였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서 우리는 분명히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침내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으셨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의 영생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때문에 예수는 생명의 주인이시며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된다.

예수는 십자가로 향하시기 전 마지막 메시지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게 될 인류 역사의 종말을 말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최후의 심판을 말씀하신 것에서 확인된다. 예수님은 역시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죄에 대한 심판을 말하게 됐다. 특히 그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세상 끝날에 이루어질 일이며, 그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미혹 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말하면서,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여러 징후의 현상과 대환란에 대한 것도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은 기다려야 하는 미래적인 약속이면서, 깨어 준비해야 할 신앙 각성과 경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마태복음 25장에 제시된 3가지 비유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역사의 종말에 있을 심판에 대한 경종과 각성의 의미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등불 준비, 달란트 비유, 최후의 심판 등). 예수의 제자들은 받은바 은사(생명의 달란트)에 따라,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에 새 언약의 백성들이 동역자로 참여하여, 복음전파의 사역뿐 아니라, 이웃을 돌보는 선한 행위(작은 자를 섬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것이 또한 최후 심판의 기준임을 알려주기도 했다.

여기서 생각되는 것은 오늘날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기보다는, 말세의 징조와 현상들에 관한 예수님의 은유적인 표현의 유사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비록 내용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형태에 있어서 오늘날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2가지 방향의 경종과 각성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고 판단한다. 첫째는 전 세계 인류를 향한 경종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다시 창조주 하나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회개를 촉구하는 의미이다. 그것은 곧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질주하는 현재의 방향에서 그 궤도를 수정하기를 촉구하는 하나님 경고의 음성이라 할 것이다.

둘째는 역시 이 시대의 예수 제자된 우리 기독인을 향한 하나님의 경종과 각성으로 여겨진다. 즉 우리의 현재의 위치와 신앙상태를 되돌아보고,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깨어 있음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종의 음성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여전히 이 시대에도 기후위기문제와 팬데믹의 현상을 통하여 전 인류의 창조주에 대한 불신앙을 깨우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의와 평화의 하나님을 전 인류에게 전하는 일에 사명과 책임을 일깨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일에 임하는 준비와 각성에 최선을 다하는 자로 나서게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현상과 관련하여, 그 자체가 심판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든 기독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고된 최후 심판을 기억하고, 종말론적인 메시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기후위기와 팬데믹으로 위협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며 치유하는 일에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모습으로 참여하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이와 같은 정의와 평화 가운데서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보전되도록 힘써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2)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인재(人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인간의 책임성을 일깨워 준다.

왜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굳이 다시 강조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원죄(原罪) 때문이 분명하다. 원죄는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일에 근거하고 있다. 원래 인간은 창조주와 인간(이웃)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그 존재가치가 보장되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러나 창조주와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시킨 인간은 인간(이웃)과의 관계 또한 단절하게 되었으며, 인류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살인과 전쟁을 일삼는 악을 행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국가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자신들 스스로 삶의 법칙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성도 망각한 채, 자연의 모든 피조물을 먹거리의 이용 도구로만 사용해왔으며, 자연을 파괴하여 인간의 욕망과 부의 축적에 자본주의적인 생산도구로만 이용했다. 거기서 오늘날 인류 전체와 창조세계인 지구가 몸살을 앓게 된 자연 질서의 파괴와 생태계 교란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기후위기와 생태계의 위기, 나아가서 팬데믹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인간의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유의 남용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인간은 기후위기와 팬데믹과 관련하여 스스로 초래한 인류 파멸과 지구파멸의 재앙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인재(人災)에 대해서 우리 기독인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의 아들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인간을 구원하려는 사랑은 여전히 우리 인간들이 회개하고 창조주와 이웃(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성을 인지하고, 자연에 대해서는 지성(知性)으로, 이웃에 대해서는 덕성(德性)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는 경건성(敬虔性)으로 인간의 올바른 본성이 능력을 발휘하는 책임성의 삶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스스로 초래한 인재에 대하여 어떻게 책임져야 할 것인가? 생각하면 원래 인간이 파기한 하나님과의 계약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속죄와 용서와 사랑(십자가와 부활)으로 인간이 치유되는 기회를 부여해줬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분 안에서 우리 모두 자신을 새롭게 하며,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창조주와 무관한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메인 삶을 지향하던 방향의 궤도수정을 감행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와 이웃과 자연과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과도한 소유욕과 축적의 욕구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과도한 소비생활을 축소하고 절제하는 모습의 전환이어야 한다. 이웃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도모하며,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모습으로의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특히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화해하며, 자연 피조물을 사랑하며, 자연오염을 억제하며, 생태계의 교란을 중지하며, 각자 생태학적인 영성 기르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각 나라 정부들은 유엔의 IPCC의 자연과학자들과 기후과학자들과 감염전문가들의 경고대로 지금부터라도 이산화탄소의 제로 상태를 견지하기 위한 자연 친화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오늘날 전 세계인이 당면한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과연 하나님의 심판인가?’란 질문의 신학적인 대답을 밝히는 일에 집중해 왔다. 물론 필자의 결론은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직접적인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심판과 전혀 무관한 인재(人災)인지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이것은 서로 깊이 연관된 사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는 3가지 개연성에 따를 때인데, 첫째, 기독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며, 특히 하나님의 섭리 신앙에 근거할 때, 기후위기문제와 팬데믹은 하나님 섭리의 장중에서 발생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과 자유의지의 선용에 따른 관계성과 책임성의 의미인데, 그것은 인간이 창조주와 이웃(인간)과 자연(창조세계)에 대한 관계성과 책임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이러한 관계성과 책임성을 망각한 채, 하나님을 떠나 이성적 사고와 자유의지를 선용하기보다 마음대로 악용하는 무책임한 행동이 오늘날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초래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17세기의 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에게서 배우게 되었음을 밝힌다. 셋째,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하나님의 심판 자체는 아니지만.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과 경종의 의미를 보여준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새 언약의 구원시대를 열어준 예수 그리스도의 전 인류를 위한 구원 사역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예수는 역사의 종말을 전제한 최후 심판을 예고해 줬으며, 그 심판은 그의 재림과 더불어 이루어질 것을 예고해 줬다. 오늘날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예수의 종말론적인 최후 심판 전의 징후와 여러 현상과의 관계에서 은유적인 유사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며. 재림과 역사의 종말론적인 심판과의 관계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전제에서 기후위기문제와 팬데믹은 오늘 전 세계를 향한 심판의 경종과 각성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위기문제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류 스스로 만든 인재(人災)로서 그 문제들의 극복을 위한 책임도 인간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문제의 극복방법은 무엇보다도 전 인류가 관계성과 책임성의 존재로 지음받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인생길의 방향전환과 궤도수정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전환과 궤도수정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파기된 하나님의 언약이 새롭게 회복하는 전제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전 인류의 위기문제인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극복하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물론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 자체는 아니지만, 인간이 스스로 행한 일들로 인하여 스스로 겪어야 하는 인재(人災)의 의미를 지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재앙(災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이 시대를 향한 종말론적인 하나님 심판의 경고요, 경종과 각성으로 알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염원한다.

 

 

[참고도서]

 

강원돈,코로나 판데믹의 궁극 원인과 대책,2020년 혜암신학연구소 세미나 제2, 강연자료집4,1012.

김현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PCC, Intergovernmental Panal on Climate Change)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본 기후위기의 현실, [엮은이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이정배 외 다수의 글 모음집, 기후위기 한국교회에 묻는다, 도서출판 동연, 2020.]

김균진, 기독교신학 2권 새물결 플러스, 2014.

데이비드 콰먼,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강병철 옮김(제주:꿈꿀 자유 서울의학서적,2020)

송진순의 글, 기후변화, 세계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인,

백영경, 기후위기 해결, 어디에서 시작할까? 계간 창작과 비평, 2020.봄 통권 187. https://magazine.changbi.com

이상규, 중세 흑사병은 하나님의 징계였을까? 37, [안명준 외 17명 공동 편집,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 도서출판 다함, 2020].

서진한,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교회를 상상하다, 대한기독교서회 2020.

장동현의 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에서 기독교 생태교육까지, 203-204. [이정배 외 다수 편집, 기후위기, 한국교회에 묻는다, 동연, 2020].

조천호, 파란 하늘 빨간 지구, 동아시아 2019.

정일웅,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해설, 박진만 편집, 총회개혁신학 출판부 2020.

정일웅,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교회의 사명, 2020년 혜암신학연구소 제2차 세미나 발표자료집, 119

정일웅,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범지출판사 2020,

코메니우스, 대 교수학, 정일웅역, 나눔사, 2015.

 

 

[논문요약]

 

필자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인가?’란 논제에 따라 신학적인 대답을 밝히는 작업을 수행해 봤다.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구성한다. 첫째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여러 학자의 견해를 근거로 설명했으며, 또한 팬데믹에 관해서도 감염학자들과 여러 학자의 견해를 근거로 밝혀봤다. 일차 결론은 기후위기의 문제와 팬데믹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인간이 초래한 인재(人災)로 간주하는 입장을 제시했다. 두 번째 부분은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인가?’란 논제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이 질문의 대답을 제시하기 위하여 필자는 전제하는 것이 있는데, 먼저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직접적인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전제했다. 이유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인재(人災)와 천재(天災)의 관점 사이의 연관성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겨지는 근거로, 3가지 신학적인 개연성을 제시했다. 첫째, 기독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의 하나님 섭리 신앙의 중요성을 전제할 때, 기후위기문제와 팬데믹은 신적인 섭리의 장중에서 발생한 일이며 그 가운데 놓여 있는 일로 판단했다. 둘째는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과 자유의지의 남용에 따른 인간의 관계성과 책임성의 의미를 거론했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주와 이웃(인간)과 자연(창조세계)에 대한 관계성과 책임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하여, 인간은 원래 이러한 창조주와의 관계성과 책임성을 망각한 채, 하나님을 떠나 이성적 사고와 자유의지를 선용하기보다 마음대로 악용하는 무책임한 행동이 오늘날 전 세계가 경험하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문제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입장은 17세기의 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의 신학적인 관점에 근거하여 거론한 것이 특징이다. 셋째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과 경종의 의미를 보여준다는 전제였다. 이것은 새 언약의 구원시대를 열어준 예수 그리스도의 전 인류를 위한 구원 사역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역사의 종말을 전제한 최후 심판을 예고해 준 것에 근거하였으며, 이러한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이루어질 것을 예고해 준 것에 근거했다. 그리고 필자는 오늘날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예수의 종말론적인 최후 심판 전의 징후와 여러 현상을 말해 준 것과의 관계에서, 은유적 유사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재림과 역사의 종말론적인 심판과의 관계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전제에서 기후위기문제와 팬데믹은 오늘 전 세계를 향한 심판의 경종과 각성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위기문제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류 스스로 만든 인재(人災)로서 그 문제들의 극복을 위한 책임도 인간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문제의 극복방법은 무엇보다도 전 인류가 창조주와의 관계성과 책임성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의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인생길의 방향전환과 궤도수정에 달렸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전 인류의 위기문제인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극복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하나님의 심판 자체는 아니지만, 이 시대를 향한 종말론적인 하나님 심판의 경고요, 경종과 각성으로 알고 그 일에 대처하는 이웃과 자연에 대한 책임으로서 기독교적인 신앙의 지혜의 필요성을 강조해 봤다.

 

 

[Abstact]

 

According to the thesis,'Is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the judgment of God?', I worked to reveal the theological answer. The thesis is largely divided into two parts. First, the root cause of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was explained based on the opinions of several scholars, and the pandemic was also clarified based on the opinions of infectious scientists and several scholars. The primary conclusion presented a position where the problem of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were regarded as human-made human resources rather than judged by God's judgment.

The second part focused on the topic of 'Is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the judgment of God?'. To answer this question, I presuppose, Although I don't think it's God's judgment, it presupposes that it is difficult to conclude that it has nothing to do with God's judgment. The reason was that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were linked between the perspectives of talent and genius. And I present three logical probabilities as the basis for the climate crisis and pandemic being regarded as God's judgment.

First, because Christianity is a religion that believes in God the Almighty Creator. In particular, given the importance of Christianity's faith in God's providence,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were judged as occurring in the midst of the divine providence and that lies in the midst of it. Second, the meaning of human relations and responsibility according to the good use of reason and free will given to humans was discussed. It presupposes the fact that human beings have relations and responsibility to the Creator, neighbors (humans) and nature (creative world). It was judged that the irresponsible behavior of using thoughts and free will at will rather than making good use of it, caused the climate the crisis and the pandemic that the world is experiencing today. This position is characterized by the theological view of Comenius, a historical figure of the 17th century.Third, it was the premise that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show the meaning of God's eschatological judgment and warning for all mankind.This was confirmed in the salvation ministry of Jesus Christ for all mankind, which opened the era of salvation of the new covenant, and was based on the foreshadowing of the final judgment premised on the end of history, and that such judgments will be made with the Second Coming of Christ. It was based on what I did. And I judged that today's climate crisis and pandemic have a metaphorical similarit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igns of Jesus' apocalyptic doomsday and telling of various phenomena. In addition, he emphasized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econd Coming and the eschatological judgment of history cannot be ignored.

In conclusion, in this premise, the climate crisis issue and pandemic are thought to have the meaning of the alertness and awakening of judgment for the world today, and these crisis issues are human resources created by humans who have left God to overcome those problems. It was judged that humans should also bear responsibility for themselves.

And he emphasized that the way of overcoming this crisis problem is, above all, recognizing that all mankind has a relationship and accountibility with the Creator, and reorienting and reorienting the life path to return to God the Creator and Christ, who came as the Messiah of salvation. I thought that was the secret to overcoming the climate crisis and pandemic, which are the crisis problems of all mankind in this era. Of cours, the climate crisis and the pandemic are not God’s judgment itself, but it is an eschatological warning of God’s judgment for this era, and emphasizes the need for wisdom of Christian faith to know and cope with alarming and awak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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