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트라우마: 죽음과 삶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
『성령과 트라우마: 죽음과 삶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
  • 이근창 기자
  • 승인 2019.05.0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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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 램보 지음, 박시형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신국판 352쪽.값 15,000원.

이 책은 트라우마에 대한 최근 연구들에 근거해서 십자가와 부활, 구원을 재해석하고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의 관점에서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새롭게 제시한 책이다. 전통신학의 십자가 해석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고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희생(죽음) 중심의 구원론을 만들었으며, 부활과 구원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 교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죽음을 이긴 부활의 승리”로 해석하지만, 이런 해석은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부응하며 미래의 희망과 성공을 약속하지만, 승리에 대한 보장이 없는 트라우마의 끈질긴 고통을 외면하며, 폭력을 정당화할 위험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곧장 부활로 직선적으로 이어지는 “허울 좋은 구원”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가장 큰 적”이라고 보는 저자는 “많은 이들에게 삶은 죽음을 이긴 승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삶은 죽음 한가운데서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며, 그들의 삶 중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성토요일의 심연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발타자르의 설교들, 스페이어의 지옥에 대한 환상들, 요한복음의 막달라 마리아와 애제자에 관한 본문들, 캐서린 켈러의 성령 해석 등에 근거해서, “성토요일의 성령론”을 제시한다. “성토요일의 성령”은 죽음과 삶 사이에 아주 미약한 모습으로 현존하며 예수의 죽음과 제자들의 활동을 목격하고 증언한다. 저자는 숨, 위로자,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성령의 활동을 설명하고, 성령의 지속적인 목격과 증언을 사랑과 동일시한다. 죽음과 삶 사이의 증언이 말하는 진실은 사랑이 남았고, 우리가 그 사랑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끔찍한 고통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저자는 “끈질기게 버티는 힘으로 남아 계신 성령의 사랑”을 강조한다.

2. 저자 및 역자 소개

   
 

셸리 램보는 미국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서, 트라우마와 폭력에 대한 종교적 응답에 초점을 맞추어 그리스도교 전통을 탐구하며, 최근에 Post-Traumatic Public Theology (Stephanie Arel과 공저, 2016)와 Resurrecting Wounds: Living in the Afterlife of Trauma (2017)를 발표했다. 박시형 목사는 서강대학교 수학과와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Boston College에서 영성 전공으로 신학석사를 마쳤다. 박시형 목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는 공동체를 꿈꾸며 2018년부터 경기도 광주에 ‘야곱의 우물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

 

3. 서평

죽음과 삶 사이에 존재하는 끔찍한 영역을 탐구하면서, 램보는 트라우마 이론, 신학, 성서 연구의 통찰력들을 결합시켜 성령에 대한 풍부한 어휘들을 발전시킨다. 저자의 독창적인 작업은 삶의 견디기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신학이 빛을 비춰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증언한다. 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KWOK PUI-LAN, Episcopal Divinity School

“이 책은 구성 신학에서 새로운 목소리의 도래를 알린다. 램보는 다양한 자료들에 기초해서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의 주장과 씨름하면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에게 인간의 고통이라는 트라우마 경험에 응답하는 새로운 길들을 제시한다.”

―EMILY A. HOLMES, Christian Brothers University

“트라우마 이론에 해박하고 또한 뛰어난 해석가의 재능을 갖춘 램보는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 즉 끔찍하게 폭력적인 죽음과 기이한 생존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램보가 다시 들려주는 그 이야기는 주석적이고, 건설적이며, 목양적이다. 램보가 전하는 이야기는 전체를 아우르는 신학이기 때문이다.”

―MARK JORDAN, Harvard Divinity School

4. 목차

 

옮긴이의 말 __ 7

서문 (캐서린 켈러) __ 13

감사의 말씀 __ 19

서론 __ 23

트라우마 27 / 신학 29 / 방법 37 / 개요 43 / 결론 46

 

1장. 트라우마를 증언함 __ 49

트라우마라는 렌즈 54 / 증언 62 / 트라우마를 이론화하기 70

트라우마의 증언과 신학 78 / 증언의 신학적 모델들 93

2장. 성(聖)토요일을 증언함 __ 107

성토요일의 발견 114 / 성토요일을 기록함 124

성토요일을 신학화하기 142 / 십자가 형태의 증언 153

중간의 성령을 향하여 160

 

3장. 요한복음의 증언 __ 177

막달라 마리아 180 / 애제자 197 / 고별 214

남아 있기 218 / 넘겨줌 225 / 중간의 영을 향하여 230

4장. 중간의 성령 __ 237

생명의 영 242 / 심연의 성령 244 / 성령은 숨이다 248

영은 시간 속에서 다르게 움직인다 265

성령은 사랑이다 274 / 사랑이 남았다 281 / 결론 288

 

5장. 사랑 안에 남아 있기 __ 295

구원하는 자기 299 / 2008년 1월, 뉴올리언스 305

러브스토리 313 / 중간으로부터의 구원 319

저류를 추적하기 329 / 삶을 느끼기 331

신학의 증언 335 / 사랑 안에 남아 있기 346

 

5. 출판사 서평

 

한국 사회는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5.18 등 수많은 민간인 학살사건들로 인한 트라우마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쌍용차 사태, 용산 참사, 천안함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전 국민적인 트라우마, 그리고 OECD 최악의 산재발생률과 자살률이 보여주듯 트라우마가 만연한 사회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풍과 가뭄, 식량난과 식수난, 미세먼지, 지진 등 자연재해 역시 더욱 증가하고 있다. 때로는 평생 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트라우마에 대해 정신의학이나 사회적 관점에서 연구한 책들은 많이 출판되었지만, 트라우마 경험을 근거로 기본 교리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구원론을 재검토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질문들

“아우슈비츠 이후” 시대에도 여전히 하느님을 “역사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이 상징하는 “우주의 지배자 하느님”은 아직도 살아 계신가?

“세월호 이후”에도 여전히 “십자가의 죽음(희생)을 통한 구원”을 선포할 수 있는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잔인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왜 성금요일의 어둠에서 벗어나 서둘러 “부활의 승리”를 찬양하려 하는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구원론은 왜, 또 어떻게 온갖 트라우마 경험들을 외면해왔는가?

끔찍한 트라우마 경험들은 전통적인 신론과 구원론을 어떻게 재구성하도록 만드는가?

왜 트라우마는 신학담론의 한 문제가 아니라 구원 신학의 재구성을 위한 “열쇠”인가?

예수의 갑작스럽고 참혹한 죽음 앞에서 제자들은 어떤 트라우마를 겪어야만 했는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에서 시력과 의식이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 이유는?

자기 인생이 “죽음을 이긴 승리”가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승리”란 무엇인가?

저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 대신에 “성토요일의 성령”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저자가 몰트만처럼 성령을 “생명”과만 연결시키지 않고 죽음과도 연결시킨 이유는?

“성토요일의 성령론”이 강조하는 “남겨진 사랑”과 증언, 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인가?

6. 책 속으로

트라우마는 죽음과의 만남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세계와 그 속에서의 익숙한 삶의 모습을 산산이 부서뜨린 끔찍한 사건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에서부터 단절이 발생한다. 한 사건은 모든 것이 철저히 끝장난 것으로 생각되어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생존’이란 용어는 트라우마 사건 이후 삶이 중지된 상태를 말한다. 트라우마 사건은 그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된다. 삶은 완전히 다르게 정의되며, 불확실하고 상처받기 쉬운 트라우마 이후의 삶은 늘 죽음이 함께 있음을 뜻한다.(28-29)

나는 신학이 말하는 죽음과 삶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고, 이를 통해 트라우마의 고통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구원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트라우마 속에서도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의 현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구원 말이다. 삶과 죽음을 양극단에 놓는(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고 보는—옮긴이) 해석으로는 이런 구원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트라우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삶 속에 남아 있는 죽음, 혹은 삶 속에 만연한 죽음을 설명해야만 한다. (32쪽)

트라우마 경험은 죽음과 삶의 관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구원 이야기들에 도전한다. 죽음은 완결된 어떤 것이 아니고, 삶도 새로운 시작이나 출발이 아니다. 삶과 죽음을 서로 반대되는 양극단에 놓은 채 구원 내러티브를 해석하는 한, 트라우마 경험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원 내러티브는 대개 생명(부활)이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이야기로 단순하게 해석된다. 이런 관점이 어떤 약속이나 희망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생명이 죽음을 극복했다는 단순한 해석은 위험하다. 이런 해석은 새 것이 옛 것을 대신하고, 선이 악을 무찌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이 마무리되고 새 삶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관점은 곤경에 처한 현실에 대해 얼버무리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앨런 루이스(Alan Lewis), 코넬 웨스트(Cornel West)와 같은 신학적인 관점을 아우르는 종교학자들은 죽음(십자가)과 삶(부활)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처럼 성급하게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그리스도교 승리주의(triumphalism)와 대체주의(supercessionism)가 될 수 있다. 만약 구원의 생명이 죽음을 이기거나 어떻게든 죽음이 종결되는 행복한 승리의 끝맺음으로 그려진다면,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경험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묻혀 버릴지도 모른다.(33)

트라우마가 주는 통찰은 치유와 구원을 신학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해석학적 렌즈를 만들어 낸다. 그리스도교 내러티브 속 죽음과 삶의 관계는 이 렌즈를 통해 보다 다양한 빛을 발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신학이 반드시 탐구해야 할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 신학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한 열쇠다.(41)

2장에서는 죽음과 삶 사이에 위치한, 신학적으로 중간의 날이라 부를 수 있는 성(聖)토요일을 살펴보려 한다. 나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 스위스 출신 가톨릭 신학자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역자주))와 아드리엔느 폰 스페이어(Adrienne von Speyr, 1902-1967, 스위스 출신의 가톨릭 의사이며 신비주의 신학자로서 60권 이상의 책을 썼다.—역자주)의 신학을 통해 이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이들의 신학은 성토요일의 독특한 구원 메시지를 증언하기 위한 중간 영역을 만들어 낸다. 이 렌즈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3장에서는 십자가와 부활 중간에서의 제자들의 활동과 이에 대한 요한복음의 해석을 살펴보려 한다. 이 렌즈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두 경우 모두, 죽음을 넘어서긴 했지만 살아 있다고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찜찜한 사건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이 쉽지 않음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이런 해석은 삶 속에 지속되는 죽음의 흔적들을 목격하고 증언해야만 하는 복잡한 상황을 드러낸다. 트라우마라는 렌즈를 통해 앞서 언급한 텍스트들을 해석해 낼 때, 그 텍스트들은 살아남은 삶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생존의 텍스트가 된다. 성서와 신학 텍스트들에 대한 익숙한 해석에서 벗어날 때 텍스트가 증언하는 측면들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특정한 해석들을 유지하기 위해 묵살되고 묻혀진 측면들을 추적할 수 있다. (43)

그리스도교의 성서 안에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부활의 이야기와 부활 후의 만남들 안에 있다. 구원하는 능력(redemptive power)은 예수의 죽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경험한 공동체 안에 있다. 브록은 “구원은 화육(성육신)을 고백하는 공동체적인 실천들과, 삶 속의 성령, 그리고 부활과 낙원에 대한 계속되는 성령의 약속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지배적인 구원 이야기는 오로지 십자가에서 성취된 ‘업적’(work)에 비추어 부활을 해석한다. 부활은 승리의 시작이지만, 그 승리는 죽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죽음이 중심에 자리 잡은 그리스도교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이들을 휘두르는 나쁜 소식(bad news)이라는 비판이다.(317-18)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구원 내러티브들(redemptive narrative)은 그저 심연의 표면을 스치듯 지나친다. 허울 좋게 반짝거리는 구원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가장 큰 적일 것이다. 이 구원은 약속만으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을 약속한다. 많은 이들에게 삶은 죽음을 이긴 승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삶은 죽음 한가운데서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며, 그들의 삶 중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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