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절에 하나됨 추구 절실
[사설] 3.1절에 하나됨 추구 절실
  • 양진우 논설위원
  • 승인 2024.03.01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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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이다. 한국교회가 31, 전국 각지에서 소속 단체 및 교단 별로 제105주년 3.1절 연합예배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런데 하나의 모습과 하나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각기 다른 기치와 이념을 가지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행사를 치를 전망이다.

극우와 극좌적 성향을 가진 기독교 단체들 양자의 주장을 비교해 보면, 서로 다른 종교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모습을 띠는 이유는 교단 및 단체들이 연합기구를 각각 서로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연합 등 널리 알려진 연합단체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않은 극우적 보수기독교단체들도 다수 있다. 이들은 3.1절에 서울 중심가 광장 등에서 매년 좌파·종북세력 척결을 외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뭇 다르다. 이들로 인해 안티 기독교세력들이 한국교회를 극우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과연 19193.1운동 당시 기독교는 어떠했나?

18849월에 정식으로 의료선교사가 입국한 후 1896년부터 시작된 독립협회 운동은 예수교인들이 깊이 관여해 국민의 권리와 자유, 국가의 독립 주권을 고양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조선 봉건적인 정부와 결탁한 일제는 이 운동을 저지시켰다. 독립협회 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일기 시작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장로교 계열 선교사들은 교회의 비정치화정교 분리의 입장을 천명했다. 그래서 1905년 까지는 기독교인들이 정치 문제에 적극적으로는 개입하지 않았다. 또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조선 교회가 민족문제를 외면케 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성장하자 일제는 적극적인 탄압정책을 펼쳤다. 105인 사건, 종교법에 의한 기독교 선교 활동의 제약,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대한 압력 등이 강화됐다. 그 이유는 1910년 일제 식민지적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었던 기독교가 항일적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3.1 운동 전에도 항일민족 독립 운동에 이미 나서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기독교가 이승훈이 중심이 된 100만 신도 천도교 측과 3.1운동을 함께 준비키로 제휴하게 됐다. 당시 조선 인구의 1.3%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추진된 3.1 운동은 지도자 중심의 계획 단계를 거쳐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민중화되고 폭력화 되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것은 기독교의 전래 때부터 성장한 반봉건적 사회 개혁 의지와 반외세적 국가 자주 의식이 항일 민족 의식으로 발전해 3.1운동이 가능했다.

반면에 강력한 독립 운동을 펼친 기독교와 미국 선교사들이 순수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될까봐 일제에 협조하던 기독교의 흐름이 이어졌던 것이다.

오늘날도 두 갈래 길로 나뉘어 전혀 다른 기독교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쪽은 일제 등 외세가 들어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같은 민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강화한다. 반면에 한편에서 또 다른 이데올로기로 민족 내 극단적 대치를 하면서 사색당파의 늪으로 빠져간다. 이러면 외세만 어부지리 이득을 보게 된다. 분단은 주변국에게 이득이요, 통일은 조국과 민족에게 이득이다. 분열과 전쟁은 망하는 길이요, 단합과 평화는 번영의 길이다.

예수가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말씀한 것을 되새김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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