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별대담] 베스트셀러작가 김남준 목사
[신년특별대담] 베스트셀러작가 김남준 목사
  • 양진우 기자
  • 승인 2021.01.27 0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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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흐름 맞춰 글쓰기 형식 파격 전환, 신간”

“코로나 후 대면예배 사모해 교회당 몰려올 것”

“교회가 신학생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후원해야”

“언론 사명 다하는 교계언론되면, 후원자 증가”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 신학과 조교수, C헤럴드 후원이사 겸 객원 논설위원)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 신학과 조교수, C헤럴드 후원이사 겸 객원 논설위원)

 

일시 : 120일 오후 3

 

장소 : 열린교회 영접실

 

대담 : 민찬기 목사(C헤럴드 이사장 겸 논설위원, 예수인교회)

 

기획: 양진우 편집국장

 

기사 : 김병중 취재부장

 

사진: 안계정 석좌기자(기독교신문 취재부장)

 

 

 

김남준 목사는 스물한 살 때 톨스토이를 읽고 기독교에 귀의하고, 삼십 대 중반에 목회자가 됐다. 열린교회를 개척해서 지금까지 담임하고 있으며, 총신대학교 신학과 조교수로도 봉직하고 있다. 또한 C헤럴드 후원이사 겸 객원 논설위원으로 동역하고 있다.

1997년 이래 기독교출판문화상을 4회 수상했다(1997, 2003, 2005, 2015).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로 약 40만 부가 팔린 게으름외에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 염려에 관하여등 다수가 있다. 최근에는 장르에 매이지 않는 글쓰기로 일반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로 첫 자전적 에세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김영사을 출간했다. 새해를 맞아 김 목사와 한국교회와 신학교, 언론에 대해 대담했다. 편집자 주

 

 

Q. 목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목사님은 기획력이 뛰어나고 평범함을 넘어서며 미래를 끊임없이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목사님은 누구나 힘겨워하는 이 코로나19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고 계신지요?

 

A. 처음에 거의 멘붕(정신적 충격)이었죠. 왜냐하면 이런 것을 어려서부터 여태까지 신앙생활하면서 한번도 겪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두달은 조금 혼란스러웠는데 저희는 일찌감치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게 금방 끝날 게 아니다. 그래서 영아부부터 시작해서 아예 장년부까지 전부 다 자기네 교실과 예배실에서 인터넷 방송을 송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코로나가 두 달째 접어들기 전에 모두 바꿨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이버 사역으로 간다고 다짐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이것이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작가인데 요즘은 훨씬 설교하는 횟수도 줄고 하니까 글을 쓰고 연구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창조적으로 성도들을 목양하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Q. 코로나로 인해 목사님께 책 쓰고 묵상하는 시간이 더 주어졌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외부활동이 막혀있는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해소하고 계신지요?

 

A. 답답하기는 하죠. 하지만 저는 외부 활동을 못해서 안달하던 사람이 아니니까 외국에 있는 학자들이나 목회자들과 영상으로 통화하고 또 혹은 영상으로 강의하기도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목회자들에게 한번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Q. 목사님은 저술 활동을 계속 하시는데 요즘 특별한 책이라든지 트렌드라든지 특별히 묵상한 어떤 분야가 있는지요?

 

A. 저는 작년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염려에 관하여(생명의 말씀사)라는 책을 써서 지난 10월 하순경 출판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제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1995년도에 작가로 데뷔를 했는데 26년 정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엄청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보다 책을 훨씬 덜 읽습니다. 책을 작가가 써도 따라오는 호흡이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모든 책이 덜 팔리니까 제 책도 덜 팔리고, 전성기에 비하면 상대가 안될 정도로 독자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모든 출판사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일년 동안 작심을 하고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책을 읽지 않는가?”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현대 소설을 읽으며 하지 않던 SNS에 들어가서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글들이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구를 했더니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첫째는, 문장이 단문이다. 매우 짧은 문장을 선호하지, 옛날 우리 때처럼 화려하게 수식이 많이 된 문장들을 싫어한다. 두 번째는, 우리 때는 논리적인 글들을 원했는데 지금은 논리적인 것을 원하는게 아니라 감성적인 글을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옛날 문체로 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제가 평생 써오던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문체를 개발해서 첫 번째 책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김영사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짧은 단문, 그림 같은 언어로 이루어져 기독교 내용을 변증하는 변증서로 썼습니다. 어거스틴을 제가 수십 년 동안 사숙(私淑)했는데 어거스틴에게서 가장 감동받은 여덟 문장을 골라서 한 권의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통해서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내가 써놨으니까 와라 그러지 않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글로 다가갈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고 있는데 새로 낸 책은 기독교 쪽이 아니라 일반 문학 에세이 쪽으로 분류되어서 팔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 같습니다.

 

 

 

Q. 아무래도 기독교 색채를 띤 책들은 기독교인이라는 독자층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사라고하는 일반 출판사를 통해 일반적인 언어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목사님의 대단한 변화와 풍부한 독서력에 의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께서는 청교도 쪽에도 굉장한 조예(造詣)가 있으시고 그쪽에 영향을 많이 주셨는데 지금도 계속 그 일들을 하고 계시는지요?

 

A. 기본적으로 제 신학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년에 돌아가신 리전트 대학의 패커(J. I. Packer) 교수는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청교도를 지금 그대로 가져다 쓰려고 한다면 현실에 적용하는 데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재해석해서 오늘에 맞게 적용하려고 한다면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저는 그 패커 교수의 말을 전적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의 청교도들의 저작들을 많이 읽었고 연구했지만 그것들을 베껴 오늘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정신을 분석해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설날을 앞두고 민찬기 목사(C헤럴드 이사장 겸 논설위원)가 김남준 목사(후원이사 겸 객원 논설위원)을 방문해 대담을 나눴다.
설날을 앞두고 민찬기 목사(C헤럴드 이사장 겸 논설위원)가 김남준 목사(후원이사 겸 객원 논설위원)을 방문해 대담을 나눴다.

 

Q. 목사님의 언어의 마술사같은 재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목사님의 교회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미국 뉴욕장로교회 같은 경우 공단을 리모델링해서 건축 대상을 받았는데, 목사님도 공장같은 건물을 인수해 모델링해서 교회당으로 사용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저희 180명의 교인들이 방배동에서 건축업자가 매입한 교회를 월세로 사용했는데 약 3년 만에 1,000명이 됐습니다. 더 이상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는데 마침 건축업자도 건물을 헐어 집을 지어야 하니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안양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곳이 그리 썩 좋지 않았는데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때 저희들이 예배당으로 쓰던 이 건물은 사실 유서 깊은 건물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지어져서 가발공장으로 사용하다가 나중에 전자제품공장으로 사용했습니다. 한국 공업 발전사와 발자취를 함께 한 건물을 교회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놀랍게도 이 건물은 1970년대에 한경직 목사님이 1년 반 동안 매주 목요일에 오셔서 여기에 있는 직원들을 상대로 성경 공부를 가르쳤던 장소입니다. 그 사장님이 바로 그 교회의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분은 26세 때 한 목사님의 안수를 받고 장로가 됐다고 하니까 참 대단한 것이죠. 그래서 그 공장을 깨끗이 수리해서 쓰다가 약 6년 전에 작은 화재가 났습니다. 그런데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까 도저히 다시 쓸 수가 없어서 허물어야 될 상황이었는데 완전히 허물고 새 커다란 빌딩을 짓지 않고 역사적인 것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예쁘고 조그맣게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일보에 특집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여태까지 목회해 오고 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서 제가 많은 훈련도 받았고 또 하나님께 더 많이 매달려야하는 시간들도 가졌던 것 같습니다.

 

 

 

Q. 목사님은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수 사역도 하고 계신데 요즘 세대들 가운데 신학 희망자들이 줄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 과잉 생산과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거기에다 나이든 사람이 신학교로 오기도 합니다. 앞으로 사역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이 무엇을 준비하면 다음 세대를 목회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요?

 

A. 지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학교는 심각합니다. 우선 지망자가 줄고 있습니다. 문을 닫는 신학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신학교도 한창 전성기에 900명까지 모였는데 문 닫기 바로 직전에 놓여 있고, 최근에 제가 알게 된 신학교도 역시 똑같이 그런 상황에 도달해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무료 신학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총신에 제가 입학할 때 목회학석사(M.div) 과정에 들어가는게 201이었습니다 1,200명이 지망하면 그 중에서 60명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는 거의 21 이하로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총신은 그래도 낫지만 지방 소재 신학교는 미달되는 일들이 속출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결국 지망자가 적어졌다는 이야기인데, 그 얘기는 교회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 목회자직에 대한 매력을 점점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오래 전에 과감하게 기독신문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열 두 차례에 걸쳐서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여 학교를 경영하던 시대를 끝내야만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재정 때문에 영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모든 면에 소양이 안되는 사람을 뽑지 말고, 학교는 등록금에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 버리자. 교단 산하에 있는 모든 교회는 예산의 0.5% 정도를 신학교에 내자.”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를 기준으로 일 년에 5천만원 정도가 됩니다. 그것을 내면 그 돈을 모두 모아 가지고 우선 교수들에게 충분한 생활 보장을 해줘 다른 염려 없이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토록 주택 문제까지 다 해결해줍니다. 학생들에게는 일체 등록금을 받지 말고 학생들 정원의 많은 부분을 반납하고 필요로 하는 학생이 얼마인지를 알아봐서 그 학생 만큼만 정원을 받고, 학생들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진짜 미래의 목회자가 돼서 한국을 살릴만한, 지금 있는 목회자들 보다 훨씬 나은 목회자가 될 가능성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등록금과 책값, 심지어는 생활비의 일부까지, 가능하면 거처까지 재학하는 동안 충분히 누리면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그 중에 훌륭한 학생들은 미국 등 외국으로 공부하도록 유학보내고 또 개척할 사람들은 개척할 수 있도록 신학교에서 노하우를 가르쳐 주고 교계의 지원을 받는, 학문과 사역의 인큐베이터 같은 역할을 신학교가 해야 미래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저도 그런 부분을 고민해 봤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권위주의에 대해 거부감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열린 사고의 리더십과 트랜디한 시대의 흐름과 영적 흐름을 읽어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리더들이 필요한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목사님께서 우리 교계에 대한 것이나 타 교단이나 우리 한국교회의 미래의 화두,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시 말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지금은 사실 전대미문의 상황 아닐까요? 제가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이렇게 오래 교회를 나갈 수 없도록 강요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6.25 때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마어마한 충격이었고 사실 이 충격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중형 교회 이하 특히 소형 교회들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보도에 의하면 평소 온라인 헌금이나 온라인 시스템이 되어 있던 교회는 재정적인 충격을 가장 적게 받았고 이런 것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교회는 실질적으로 40-50% 까지 헌금이 줄어들었습니다. 최근에 교인 500명 이상 되는 목회자들이 모였는데, 이런 훈련이 되지 않은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교회는 헌금이 20%에서 30%까지 줄었다고 아주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끝났을 때 어떻게 될 것이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이 코로나가 내년 6월이 되어야 정상화될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코로나를 견딘 기간이 2년 반 정도가 되는데 상당히 많이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미래의 갈 길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온라인(Online) 시스템과 오프라인(Offline) 시스템을 합쳐서 올라인(Allline)이라고 한다면 그 올라인 시스템을 어떻게 잘 구축하느냐가 교회가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서비스나 이런 것들에 대한 투자가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되고 그렇게 따라올 수 없는 교회들에 대한 교단적인 지원 같은 것도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코로나 시대에 심각하게 위협 받는 것은 교회론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알고보니까 굳이 그렇게 매 주일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것들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을 이론적으로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온라인을 하면서 보니까 사실은 심방의 필요성이 훨씬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방할 때 그 효과가 즉각적이고 아주 크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온라인이 정보는 전해 줄 수 있지만 외로움까지 달래 주지는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포스트코로나(postcorona) 시대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애인의 얼굴만 보고 동영상만 보던 사람이 더 보고 싶어지듯이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맞춰서 아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기에 진리가 있으니 너희들은 모두 원하면 와라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외로움을 같이 나누고 슬픔을 같이 슬퍼하면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을 수 있는 목회가 된다면 오히려 코로나의 경험이 더욱 우리가 실제로 연합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오프라인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우리에게 상충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일 중심의 예배’, 우리가 너무 익숙해 왔던 성수 주일 개념’, ‘전통적 교회관과 전통적인 예배관등입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 예배 같은 경우에는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도 없고 인정하지 못했는데 억지로라도 이걸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스마트폰이라는 기능이 우리 시대에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이제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대에 떠밀려가는 가치관과 흐름 속에서 우리가 격변기를 맞고 있는데 이러한 때 교회관과 예배관에 대한 칼비주의적인 새로운 정립과 무지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일깨워주고 예배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할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A. “온라인 예배가 용납 될 수 있을 거냐?”는 질문을 하는데 사실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참 애매합니다. 문화적으로, 문명사적으로 그때는 이런 시설이 없었고 전화조차도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획일적으로 판별하긴 어렵지만 우리가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염병과 흑사병이 돌았을 때 종교 지도자들이 두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 고쳐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여야 된다는 입장은 지식 없는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 결과 굉장히 페스트가 심하게 번창하고 창궐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경우에는 교회에 모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칼빈도 그랬고, 루터도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양심의 억압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제 말씀하시며 지적하신 바와 같이 주일성수 개념이 그렇지 않아도 약한 데 이런 것 때문에 더 약화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은 실제로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코로나가 물러 갔다고 하더라도 예배가기 귀찮으면 파자마 바람으로 소파에 누워서 이렇게 주일 예배를 드리겠다. 왜 안되냐? 코로나 때도 그렇게 했는데라는 반응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도 결국은 목회자에게 달린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강조하고 가르쳐도 하기 싫은 것은 결국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아무리 못하게 해도 하고 싶으면 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분들에게 이런 예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몇 십 년 전에 비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일이었습니다. 영상물은 있었지만 영상을 틀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가정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비디오 플레이어가 많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볼 수 있었는데 얼마나 그 가게가 많은지 골목마다 만화방처럼 많았습니다. 그 때 많은 문화 전문가들이 이제 영화산업은 망했다, 끝났다고 예측했습니다. “집에서 편안하게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는데 누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겠느냐?”라고 말했는데 그때는 영화관 시설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지방에 내려가면 에어컨도 없어서 선풍기 틀어놓고 영화를 보곤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비디오의 발명이 영화산업을 촉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어냈습니다. Qled급 텔레비전은 실물하고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잘 나오고, 벽면 가득 채울 수 있는 크기의 텔레비전도 나오지만 여전히 영화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해마다 어마어마한 인구가 영화산업에다 돈을 씁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오히려 온라인 예배를 통해서 진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 물밀듯 교인들이 밀려 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밀려 올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믿었던 사람들은 밀물처럼 밀려 올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도 교회 나오지 않던 사람들은 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만 적어도 그 때 교회 열심히 나오던 사람들은 더욱 사모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밀려 올 것이고 이때 오히려 예배의 중요성이 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코로나를 계기로 각인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성적으로 잘 가르쳐서 어느 부분까지 온라인을 활용하고 어느 부분까지 오프라인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려야 되는지를 가르친다면 오히려 교회가 영적으로 쇄신된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해방이 되고 종교의 자유가 주어져 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였을 때 그 감격했던 기록들을 우리가 역사 속에서 알고 있잖습니까? 그런 제2의 바벨론 포로 귀환과 같은 예배가 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해 보는 것입니다.

 

 

Q. 매우 희망적인 전망이며 저도 동의합니다.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편리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영적 갈급함과 성도의 교제에 대한 그리움은 해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집 나간 아들이 당장은 좋다고 놀지만 얼마 있다보면 집이 그리워지듯이, “예배가 그리워, 옛날이 그리워, 교회 현장에서 드리던 라이브 예배가 그리워라며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예 가나안신자들이 숨어서 예배를 드리다가 이제 아버지 집으로 가자라고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목사님께서 좋은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영화산업이 끝났다고 얘기 했는데 그렇지 않았듯이, TV가 나올 때 신문은 끝났다 했지만 신문은 신문대로 또 영화는 영화대로 역할을 합니다. 코로나 때 넷플리스를 통해 우리 드라마 시리즈들이 일본에서 크게 히트하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영적인 면에도 폭풍같은 은혜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사님의 올해 바람 또 다음 세대들에게 어떤 것을 중심해서 교육하고 붙들어야할지, 가치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코로나 상황과 먼저 관련지어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역설적으로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었던 예배하고 구역예배 모이고 또 교제하고 하는 것들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자각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면에서 코로나 이후 시대에 우리 목회자들이 잘만 한다면 이것이 교회가 영적으로 쇄신 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출산율도 저하되고, 영호남에 있는 대학들이 70% 이상 이번에 미달 되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리고, 대학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는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저출산 시대에 교회에도 이런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많이 낳는 거겠지요. 그런데 그게 목사 말 한마디로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잘 양육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길러내고 현대 문화를 숨쉬는 아이들에게 알맞는 교육을 해서 그 아이들이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받아 들일 수 있도록 교육 방법론적인 면에서 많이 개발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는 이제 목사님이나 우리 같은 세대에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않고는 신학교 갈 결심들을 못하지 않았습니까? 왜냐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이 가난과 고난 이외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제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지난 세대에게 유산으로 받았던 좋은 경건의 핵심들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잘 가르쳐서 기도하는 교인들, 말씀의 은혜를 받고 삶과 일치 시키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로 교인들을 양육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너무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 기독교 교계 언론 또는 일반 언론도 조금은 구태의연한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변화에 맞는 시대의 언론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언론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 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그 형편이 이해는 갑니다. 왜냐하면 신문사나 혹은 방송국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재정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런 재정을 뜻 있는 사람이 계속 희사해서 운영이 된다면 공정하게 굴러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누군가의 도움과 후원을 받아야 되고 후원을 받다 보면 그게 빚이 되어서 할 말을 마음대로 못하거나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자기를 후원해 준 사람 편에 서서 편을 들거나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기독 언론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언론에 아주 뚜렷한 사명감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언론에 손을 대지 않앗으면 좋겠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기 보다는 오히려 확실하게 소명감을 느끼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언론사를 설립하고 이끌어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교계 언론에 대한 지원입니다. 개개인이나 우리같은 사람이 얘기하면 파급력이 없습니다. 언론은 공적인 그릇으로 바깥에 내보내는 확산 전파력이 강하니까 언론이 올바른 길을 가서 이런 것을 올바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언론사는 주고, 교회는 교계언론이 기독교의 올바른 목소리를 사회에 대변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도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같이 해온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이 저한테 한번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네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힘들 때 어떻게 재정난을 타개할 수 있을까?”고 고민했으나 아무리 해도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컨설팅 그룹인 매킨지 회사에 상당한 금액을 주고 용역을 줬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서 이 학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 했는데 그것은 평생교육원을 세워라또는 후원자를 모집하라가 아니라 학교가 세워졌던 본래의 가치에 매진하라. 그러면 재정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무슨 뜻이냐면 본래의 가치에 전적으로 헌신해서 감동을 주어라. 그러면 그걸 보면서 누군가 헌신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돌아가신 한동대 김영길 박사님과 제가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그 분이 물러나기 3~4년 전에 그때를 기준으로 저한테 얘기하기를 자기가 총장되고 학교 후원금 700억을 모았답니다. 시골에 세운 대학교(한동대)인데, 이것을 세워 놓고 전 세계로 교수모집한다고 광고를 냈더니 쟁쟁한 학교에서 월급 수준에 상관없이 그런 학교비전이라면 내가 가서 봉사하겠다고 세계적인 교수들 450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입니다 그래서 언론사가 확실히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또 돈 조금 준다고 누구 편들고 누구를 띄워주는 신문사가 아니라 진짜 할 말을 하고 알릴 것을 알리는 신문사라는 감동을 줄 때 누군가는 후원할 것이라는 그 믿음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C헤럴드가 앞으로 그런 언론 기관이 되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Q.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귀한 말씀 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도전받고 또 많은 통찰력(인사이트)을 얻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목사님과 이런 좋은 시간 통해서 배우고 싶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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