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개혁①]노회가 바로 교회다
[노회개혁①]노회가 바로 교회다
  • 이근창 기자
  • 승인 2020.04.2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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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가 교회의 단위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
"노회는 개별 교회에 대한 감독권을 회복해야 할것"

김중락(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말씀동산교회 장로)

 

한국교회 개혁의 실마리

한국교회가 많이 아프다. 한국교회의 압도적 다수는 장로회 교회이므로 장로회 교회의 아픔은 곧 한국교회의 아픔이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처럼 얽혀 있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보면, 이를 풀 수 있는 단칼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로교회’라는 이름 그 자체에서 매듭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듯하다. 장로회 교회의 원래 정신과 시스템이 어떠했는지를 파악하고 그 모습을 회복한다면 장로회 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회복도 가능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장로회 교회 정치의 원형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문서는 스코틀랜드 교회가 종교개혁 직후에 채택한 『제2치리서』(The Second Book of Discipline, 1578)와 1643년 청교도 주도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총회가 채택한 『장로회 교회 정치』(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 1645)이다. 이들 문서는 장로회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645년 스코틀랜드 교회에 의해 채택된 『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

노회가 교회의 단위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장로교’란 말은 ‘장로회 교회’의 줄임말이다. 장로회(eldership)는 장로교의 치리회인 당회(session), 노회(presbytery), 총회(general assembly)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회는 개별 교회의 최고 의결 기구이며, 노회는 지역 내 개별 교회의 대표자들의 모임이며, 총회는 각 노회 대표자들의 모임이다. 총회의 결정은 산하 모든 노회와 교회에 강제성을 가지며, 노회의 결정은 산하 개별 교회가 따라야 하고, 당회의 결정은 개별 교회 전교인들에게 강제력을 가진다. 총회는 주로 신학적인 논쟁을 결정하는 기구이지만, 노회는 장로회 교회 치리의 핵심적인 업무를 총괄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3단계 치리회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노회이다. ‘장로회 교회’라는 명칭이 ‘장로회’의 줄임말인 ‘노회’에서 나왔다는 것은 노회가 장로회 교회의 핵심임을 말해 준다.

노회가 중요한 다른 이유는 노회가 교회의 기본 단위이기 때문이다. 『장로회 교회 정치』는 노회가 교회의 단위라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문서는 초대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나 에베소 교회가 하나의 교회였고, 그 교회 아래에 많은 회중(congregation), 즉 개별 교회들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회중을 교회의 단위로 간주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회중은 교회가 아니라 교구(parish)에 불과하다. 장로회 교회가 가장 잘 정착된 스코틀랜드에서 회중은 노회의 교구이며, 편의상 교구 교회(parish church)로 불리고 있다. 진정한 교회의 단위는 하나의 예배 모임, 즉 교구 교회가 아니라 많은 교구 교회로 구성된 노회인 것이다.

그러면 노회와 교구 교회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가? 이 문제는 1643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웨스트민스터 총회(the Westminster Assembly of Divines)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다수의 총대들은 장로회 교회의 지지자들로서 신학과 예배의 통일을 위해서, 그리고 이단의 방지를 위해서 노회가 교구 교회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총대들은 노회를 인정하지만, 노회와 의견이 다른 경우 교구 교회가 독립성을 가지고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들을 가리켜 역사가들은 ‘독립파’(the Independents)라 불렀다. 독립파는 1643년 그들의 입장을 담은 『변증론』(An Apologetical Narration)이라는 팸플릿을 출판하였다. 이 문서에서 독립파는 교구 교회가 교회의 단위라고 보았고, 노회를 상급 기구로 인정했지만, 교회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노회가 아니라 개별 교회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독립파 역시 당회, 노회, 총회의 구조를 반대하지 않았고, 국가 교회 조직 내에 남아 있길 원했다. 당시 청교도 목사인 존 바스트윅(John Bastwick)이 독립파를 ‘독립적인 장로회파’(the Presbyterians Independent)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장로회 교회는 장로회의 간판을 달고 있으나 실상은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장로회파와 대립했던 독립파가 추구한 교회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오늘날 노회는 사실상 형식적인 조직에 불과하다. 대부분 교단에서 노회를 인정하지만 모든 것은 교구 교회에서 결정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노회는 개별 교회에 대한 시찰(visitation)을 멈추었고, 개별 교회가 잘못된 교리를 가르쳐도, 미신적인 성례를 행해도, 재정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관여하지 않는다. 시찰회 모임은 친목회로, 노회는 목회자 노조로 발전한 지 오래다. 현재 한국의 장로회 교회가 이 같은 모습을 바꾸지 않으려면 ‘장로회’의 간판을 떼고 ‘독립파’의 간판을 달아야 마땅할 것이다. 노회는 개별 교회에 대한 감독권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노회가 교회의 단위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1907년 9월에 평양에서 창설된 한국 최초의 노회인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 이 때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7명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누가 노회의 회원인가?

장로회는 한마디로 ‘장로들’(presbyters)의 모임이다. 『제2치리서』는 장로회가 “목사, 박사,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장로라고 부르는 이들”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2치리서』는 “때때로 목사와 박사도 장로라고 불린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목사는 “설교 장로”(preaching elders)이고, 박사는 신학 교수로서 “가르치는 장로”인 셈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회 정치』도 “노회는 말씀 사역자(ministers of the Word)와 교회 치리자(church-governors)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말씀 사역자는 목사를 의미하며, 교회 치리자는 “치리 장로(ruling elders)”를 의미하고 있다. 『제2치리서』는 치리 장로에 대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고, “목사와 마찬가지로 영적 기능(function spiritual)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요컨대 『제2치리서』와 『장로회 정치』는 목사, 박사, 장로를 모두 장로로 보고 있으며, 이들의 모임인 치리회를 ‘장로회’라고 부르고 있다.

이 같은 치리회 구성은 목사와 장로 모두가 노회의 구성원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세워지는 과정도 우리에게 동일한 결론을 말해 준다. 목사나 장로는 모두 개별 교회 회중의 동의(선출)를 통해 노회에 의해 세워진다. 목사는 노회의 허락하에 개별 교회의 회중에 의해 선출되고, 장로 역시 노회의 허락하에 회중에 의해 선출된다. 이처럼 노회에 의해 세워진 목사, 장로 모두가 노회의 당연직 회원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단 노회에서 치리 장로를 당연직 회원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장로회 제도의 왜곡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나라마다, 노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리 장로 회원이 너무 많은 경우 이를 줄이기 위해 대의원 제도를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당연직 노회원 자격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북미의 대부분 장로회 교회가 모든 목사와 치리 장로를 다 노회원으로 여기고 노회 참석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회원이 참여하는 노회가 원칙이다. 치리 장로의 수가 너무 많아 노회의 모임이 어렵다면 작금의 노회를 세분할 필요가 있다. 실상 한국 장로회 교회의 노회는 너무 많은 교회를 관리하고 있으며, 이는 노회의 실제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에 하나 노회에서 목사와 장로의 세력 대결을 우려하여 장로들의 노회 참석을 제한한다면, 이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가 아니라 교권이라는 세속적인 욕심에 사로잡힌 자들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북미의 장로교회들이 모든 치리 장로와 목사의 노회 출석을 의무화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노회 회원이 누구냐의 문제는 노회와 당회의 바른 운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노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자들이라고 여길 때, 책임져야 할 곳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치리 장로 역시 노회의 당연직 회원이라는 인식은 그들에게 노회의 운영에 대한 더 강한 의무감과 자부심을 부여할 것이고, 사역자 간의 평등이라는 장로회의 또 다른 원칙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노회가 교권 모리배들의 정치(politics)가 아니라 교회의 바른 운영, 즉 정치(polity)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려면 이러한 혼란은 즉시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제공: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외부 기고는 C헤럴드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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