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말한다 ③회심 없는 목회는 없다
한국교회를 말한다 ③회심 없는 목회는 없다
  • 양진우 기자
  • 승인 2019.07.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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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회심이 없는 교회의 영광이 어찌 크겠는가
목회의 꽃은 회심, 죄인의 회심을 외치는 경건한 비명소리를 상실하지 말아야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담임·총신대학교 신학과 교수·C헤럴드 객원 논설위원)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담임·총신대학교 신학과 교수·C헤럴드 객원 논설위원)

“여러분이 죄와 비참에 빠져 있을 때에도…하나님은 자신의 일꾼들을 보내어 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무척이나 슬픕니다. 우리의 영혼은 심히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귀를 막고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후일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아아, 그때 우리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할 것입니다.”이 고백은 17세기에 영국 키더민스터에서 목회하였던 <참목자상>(The Reformed Pastor)의 저자인 리처드 백스터(R. Baxter)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외친 목회자로서의 눈물어린 탄식이다.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回心)은 좁은 의미의 회심과 넓은 의미의 회심으로 나뉘는데, 좁은 의미의 회심은 고유한 의미의 회심으로 구원에 이르는 최초의 회심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넓은 의미의 회심은 신자의 삶 속에서 이러한 회심이 반복적으로 새롭게 경험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유한 의미의 회심이란 거듭난 영혼이 인간 의식(意識) 속에서 활동하는 첫 번째 움직임으로써,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회심의 토대는 중생(重生), 곧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 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회심은 인간의 영혼이 최초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하나님 홀로 하시는 일이지만, 회심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의지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에게 중생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지만, 회심하도록 촉구한다(행 3:19, 16:31). 중생 없이는 회심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중생과 회심은 시간적인 발생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구분된다.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회심 여부는 그의 구원과 직결된다. 성인인 불신자는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와 믿음 없이는 구원도 없다. 그런데 오늘날 조국교회는 어떠한가?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구원 받은 자로 간주되어 세례를 받고 교회의 회원이 되지 않는가? 이것이 과연 개혁주의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인가?
구원에 이르는 조건으로서의 회심은 신약성경에서 ‘회개’, ‘중생’, ‘칭의’ 등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난다(마 3:2, 요 3:3, 롬 3:24). 이는 종말의 때에 재앙을 당할 처지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욜 2:12~13).
기독교는 회심의 종교다. 기독교의 신학적 기초를 놓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심을 경험하였고, 종교개혁자들은 심오한 회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의 견해를 토대로 구원론을 계승 발전시켰다. 마틴 루터(M. Luther) 역시 신자를 세속적 그리스도인과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 나누었고, 칼빈(J. Calvin)은 신자의 삶 전체가 구원을 완성해 가는 ‘신생’(新生)의 과정이라고 보았지만 그 역시 회심을 강조하였다. 칼빈에게 회심은 곧 회개였으며, 이는 단지 내면적 슬픔만이 아니라 옛 본성을 벗어버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가는 것을 뜻했다. 심지어 칼 바르트(K. Barth)조차도 신앙의 본질을 종교적 경험에 두는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의 견해에 반대하며 한 인간의 총체적 변화의 조건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전향(轉向)을 강조하였고,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

 

어린 시절, 나의 눈에 비친 조국교회는 회개와 눈물이 있는 공동체였다. 나는 당시의 뜨거운 찬양과 열렬한 기도의 분위기에 모두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때는 뚜렷한 회심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오늘날 조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목회와 선교적인 어려움들의 근본 뿌리는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임을 믿어 본 적이 없는 교인이 점점 다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지 교회 안에는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마 13:26, 요 6:70, 딤전 1:20).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 중 대부분은 본인이 회심하지 않았는데도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사람들의 거듭남과 회심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더욱이 이런 사람들이 신앙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써 집사나 권사 혹은 장로가 되고, 심지어는 신학교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여러 해 신학교를 섬기면서 구원의 증거가 현저히 결핍된 신학생들을 수 없이 만났다.
개신교의 힘은 확고한 구원 신앙에 있다. 모든 인간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믿음에 의한 구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복음의 분명한 제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해 통절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 의존적으로 믿어야 한다. 그리고 복음 교리와 성경을 통해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변혁이 일어나, 새로운 사상으로 그의 삶이 재편되어야 한다. 그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분명해지고, 예배의 감격은 회복될 것이다. 

 

도덕적 위기의 뿌리를 본다

 

18세기 뉴잉글랜드 부흥의 역사적 인물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J. Edwards)는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에 대하여 통렬한 회심을 촉구하였기 때문에 많은 대적자들에게 에워싸였다. 그는 비회심자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첫째로, 그들은 가치판단이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고, 자신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그들에게는 신령한 것들에 대한 참된 감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령한 것들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성품을 좋아하지 않으며 진리를 기뻐하지도 않는다. 셋째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 곧 거룩한 정서가 없다. 오히려 자연적인 본성이 변화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지고 있다. 넷째로, 그들의 의지는 하나님께 굴복치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외적 교회생활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삶에 있어서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그리고 거룩한 은혜의 수단들을 배척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자기 사랑의 질서를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거듭남과 회심은 중요하다. 그 누구도 그것 없이는 구원의 목적인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조국교회의 도덕적 위기의 뿌리를 회심이 사라지고 있는 목회 현실에서 발견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도덕적이지만 그것은 세상 윤리를 추구한 결과가 아니다. ‘거룩함’(holiness)을 추구한 결과이다. 신학적으로,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존재적 초월성과 도덕적 완전성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적용된 거룩함은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며, 또한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성품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죄의 본성을 죽이고 순결해짐으로써 온전한 인간이 되어 가도록 부름받은 사람이다. 이것을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모든 성화의 토대가 바로 거듭남이다. 거듭남을 토대로 한 최초의 회심 없이는 구원이 없고, 반복되는 회심의 경험 없이는 성화의 삶도 없기 때문이다. 신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 단회적인 회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현재적으로 경험함으로써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아 갈 수 있게 한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반복적인 경험을 통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나는 것이다(롬 6:11). 따라서 회심하지 않은 영혼들은 목양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와 싸울 수도 없고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목회의 본질로 돌아가자

 

지방의 어느 교회의 초청을 받아 말씀을 전하려 간 적이 있다. 꽤 큰 교회였다. 나를 초청한 부목사님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얼마나 급속히 성장하고 있으며 그 도시에서 얼마나 큰 주목을 받고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하나의 교구를 담당하고 있다는 그 목회자에게 구원받은 교인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목회자의 양심으로 판단한다면, 구원받은 교인은 20~30% 정도입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목사님이 맡고 있는 양떼 중 20~30%만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후배 목사님에게 양떼들의 회심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도록 정중히 충고하였다.
아아! 오늘날 조국교회에는 본질상 불신자인, 비회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 가슴 아픈 것은 많은 교회가 이들을 향한 애끓는 눈물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비전’이라는 미명 아래 포장된 목회자와 공동체의 야망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영혼의 비참한 상태와 운명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전도 아닌 전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 성장의 위기를 말한다. 그래서 교회 성장을 위해 이러저러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이 진실한 회심을 통한 확실한 구원이 없는 성장이라면 이를 어찌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죄를 인간의 불편함으로, 죄인을 환경의 피해자로, 구원을 현실 부적응자에 대한 치유로 보는 치유이신론적 사상이 기독교의 복음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조국교회는 죄인의 회심을 외치는 경건한 비명소리를 상실하였다. 죄인이 회심하여 살 수 있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설교자의 눈물 어린 외침이 그립지 아니한가?
목회의 꽃은 회심이다. 교회의 영광은 더 크게 되는 것이 아니다. 더 강하고, 더 높게 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영광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하게 회심하는 데 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 이 세상에 존재의 울림을 주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개혁파 정통주의자였던 청교도 존 오웬(J, Owen)의 다음 충고가 긴급동의처럼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목회의 본질은 죄인들이 회심에 이르게 하고, 그 회심의 은혜를 보존하는 것이다.” 회심 없는 목회는 없다.
 

※ 이 기고문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기독신문과 공동 게재됨을 밝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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